새벽 3시 53분.
씻고 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활짝 열어놓은 창문 밖은 중간중간 작은 불빛들만 떠 있는 거대한 검은색이다. 방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공기에서 시원한 냄새가 난다. 차갑고 미끌미끌한 레일 위를 맨발로 걷는 상상을 했다. 몇 년 전 여름 교토의 한 산장에서 밤늦게 혼자 온천을 했을 때 열어놓은 창문 바깥으로는 비에 젖은 숲이 있었다. 나는 벌거벗은 상태로 물에서 나와 무릎 높이의 창가에 걸터앉았다. 종아리까지 물에 담근 채로 등을 뒤로 젖혔을 때 나무속에서 물방울들이 이마와 어깨, 가슴 위로 후드득 떨어졌고 나는 양 발을 따듯한 물 밑에서 천천히 좌우로 움직였다. 바르셀로나에서 발코니 유리 문을 열고 음악을 틀면 맞은편 건물 벽과 골목길의 바닥돌들에 부딪혀 소리가 울렸다. 그 공간은 내 방의 연장인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늦은 밤 종종 창문을 열고 음악을 들으며 귀도가 도라를 위해 작은 창문 밖으로 음악을 흘려보내는 장면을 생각했다. 창문과 밤, 물, 음악에 대한 이미지들.
선조들 3부작 중 가장 완성도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기사이다. 구토의 로캉탱, 등대로의 릴리 브리스코, 존재하지 않는 기사의 랭보는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4.7 덧붙임
그러나 그가 23세 때 쓴 처녀작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은 소설의 모든 좋은 점을 이미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소설의 완성도는 그것이 쓰인 시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천재의 경우.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에 대해 칼비노가 직접 쓴 서문은 좋은 산문 형식의 표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