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22 토

by 홍석범

이틀째 강풍이 불고 있다. 바람소리가 마치 파도소리 같다. 옥외 계단에 서 있을 때 사방에서 단풍나무 씨앗들이 팽이처럼 빙그르르 돌면서 떠올랐다.






2015. 9. 22



차라투스트라 구상 당시의 유고를 읽고 있다. 우연히 달력을 보다 첫 권부터 순서대로 읽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된 것을 알았다. 그동안 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해도 그 사실은 오랜 후에야 증명될 것이다.



기 드보르가 말하길 표류는 스펙터클이 제어하지 못하는 새로운 혁명적 욕망이다. 욕망의 흐름으로서 표류는 자본주의 소비의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표류를 유도하는 것이 가능할까? 벌거벗은 도시는 다이어그램에 불과하다. 심리 지리의 표본이 된 도시는 표류를 위해 건설된 도시가 아니었다. 바로 이것이 표류를 가능하게 한 점이다. 상황을 만든다는 상황주의자들의 주장이 자기모순인 이유는 상황이 본질적으로 유도되거나 설계될 수 없는, 우연적이기 때문에 놀라운 일종의 파토스라는 데 있다. 그러나 이 특이상황들의 이접적 교배야말로 현대 건축이 가장 급진적으로 계승한 연산이다. 전용에서 느껴지는 새로움, 어떤 환상성. 성당 안에서의 장대높이뛰기와 같은. 상황의 환상성을 적극적인 은유로써 유도하고자 하는 것, 건축가가 자진해서 모든 발생 가능한 상황을 먼저 부여하는 것… 이것을 추미는 건축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건축은 오해된 형식으로서의 무대 장치로 전락한 것처럼 보인다. 반면 칸은 훨씬 더 고상한 방식으로 이 문제에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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