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28 목

by 홍석범

2014. 12. 28



올해의 마지막 주말. 정신이 점점 산만해져 한 책에만 집중했고 생각보다 빠르게 5권을 끝냈다. 올해가 가기 전 반시대적 고찰 2, 3편을 다시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이다. 당장 오늘은 이틀 전 메모해 둔 것들을 먼저 정리해야 한다.


우리는 오로지 스스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할 경우에만 자신의 내적 경험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니체는 말했다. 언어는 사상가의 재산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나는 완전히 늪에 빠져 있다. 많은 것들이 모방에 불과하다.



사물의 반짝거림은 그 사물을 향유하는 인간에 의해서만 깨달아지는 것이다. 사물과의 조응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향유자의 고양된 자아이다. 미스에게 건축의 개념은 심미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리와 근원을 보장해주는 것이어야 했고 무모순적이고 순수한 것이었다. 시대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건축은 불가항력의 진리와 설득력을 가져야만 한다고 그는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역설적으로 삶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기를 거부한다. 무모순적인 것은 가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항력의 진리는 태초의 법전처럼 유리관이 씌워져 손이 닿을 수 없는 가장 높은 단상 위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미스가 건축은 시중을 드는 것이라고 천명했을 때 건축가를 시인에 즐겨 비교했던 코르뷔지에는 건축은 감성을 사로잡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니체의 비극 이론에서 영감을 얻었던 그는 건축을 디오니소스적으로 정의했다. 그것은 빛 아래 모인 입체들이 벌이는 영원한 연극이며, 그것도 고전적인 무대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상연해야 하는 연극이다. 코르뷔지에가 볼 때 건축이 가져야 하는 특징은 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를 찬미하는 것이었다. 니체는 시를 쓰면서 인식하고 인식하면서 시를 쓴다고 했다. 인간은 사물에 대한 척도가 된다.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심장이 두근거려 잠이 들지 않았다. 커피 믹스를 우유팩에 부어 대충 흔들어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독서실에서 마음이 느긋해질 때까지 울프의 일기를 조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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