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인을 진하게 칠한 여자가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파워 소켓이 있는 옆자리에 앉아도 되는지 물었다. 유럽인들은 개인 공간에 대한 개념이 없다. 한 인류학자는 미국인들에게 용인되는 대화 거리를 1.2미터, 유럽인들의 거리를 그 반인 0.6미터로 규정했다. 내 거리는 2미터다. 그러나 이 외에 나는 거절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없었기 때문에 여자는 핸드폰 충전기를 꽂은 뒤 내 옆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내 일에만 신경 쓰며 하던 한량 업무를 계속하려는데 여자가 가방을 뒤지더니 책 세 권을 꺼내 반듯하게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한 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펼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약간 감동하여 곁눈질로 그 내용을 훔쳐봤는데 여자가 막 읽으려는 장의 제목은 ‘펜은 키보드보다 강하다’였다. 그 허접함은 약간 김빠지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내 호기심은 강화됐고 곧바로 다음과 같은 그럴듯한 추론이 떠올랐다. 이 여자는 작가 지망생이다. 작가 지망생을 위한 자기 계발서를 읽는 어리숙함이 바로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본인이 작가가 되는데 실패한 이 계발서의 저자는 지망생들에게 토로한다. 키보드로 치지 말고 윈스턴처럼 크림색 종이에 진짜 펜촉으로 쓰라고. 모든 위대한 작가들이 그렇게 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마도 이 노스탤직한 장은 격앙된 어조로 크림색 종이의 생생한 질감과 마호가니 펜대의 부드러움, 무소불위의 정교한 펜촉 끝에서 실개천처럼 흐르는 프러시안 블루의 시성을 찬양할 것이다. 이 모든 키치는 어쨌든 그 궁극적인 지향점의 고귀함을 통해 용서될만하다. 이 여자가 그 월계관의 과업을 이루어내는지는 오로지 역사만이 알 것이다. 이제 나는 이 즐거운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아주 간단한 확인 조사만 하면 된다. 그러나 검색 결과로 뜬 책의 내용은 내 상상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다음은 아마존에 올라와 있는 그 절망적인 서문의 첫 문단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왓츠앱, 스냅챗, 틱톡...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피드가 되었을 뿐 아니라 고해성사의 장이 되었다. 이 책은 스크롤 시간을 줄이고 자기 성찰의 시간을 늘리도록 도와준다. 예리한 질문과 다양한 사고 실험을 통해 당신은 남의 시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될 것이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타인에 대한 감정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대신, 개인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감정을 선언한다고 상상해 보라!’ 더 읽는 것은 고역이다. 대표로 인용되어 있는 리뷰는 한 틱톡 유저의 것이다. “이 책은 저를 웃고 울게 했고, 기쁨으로 가득 차게 했고, 제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어쩌면 실제로 눈물을 흘리며 이 라이브 리뷰를 자신의 피드에 올렸는지 모른다. 세계가 하나의 피드가 된 것도 모자라 이제 우리는 정녕 그것에 대해 책으로까지 쓰고 읽어야 하는 지경에 다다른 것인가? 이 미친 세계의 문제는 그것의 공개적인 고해성사가 자기 성찰의 매개가 되었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유의 계발서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오히려 우리는 하찮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모든 감성팔이의 완전한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 이 책이 우리들의 정신병에 대한 무용한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음은 내 옆의 여자가 증명해 준다. 이 작가 지망생은 방금 책의 표지를 찍어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