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었다.
어제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송대관의 '유행가'를 즐겨 들었었다.
오디오는 켜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곡명을 검색하던 찰나, 난데 없이 '송대관 사망', '송대관 별세' 등의 자동완성 키워드가 뜬 것이었다.
난 그 때만 해도 그 키워드들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말 고인이 돌아 가신 게 맞다면, 이미 포털에 속보로 떠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단순히, 유명인을 둘러 싼 자극적인 키워드들, 관심을 끌기 위한 루머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넘어 갔다.
그러던 오후에, 무슨 나를 놀라게 하려는 수작인가, 싶은 별세 속보가 뜨고 말았다.
그보다 놀란 것은, 어떻게 정식 기사보다 자동완성 검색어가 빠를 수 있는 지였다.
여튼.
가수 송대관은 가히 '시대를 관통했던 풍운아 가수'였다고 감히 한 줄 남긴다.
대한민국의 고도의 경제성장과 현대화의 과정을 몸소 체험한 산증인임과 동시에, 그런 변화의 시류와 애환을 그대로 노래하였고, 현대인들의 가슴 속에 파고 들면서 심금을 울린 명인이었다.
중장년 세대들은 이미 익히 아는 내용일 테지만, 간단히 이력을 적자면.
데뷔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 하다가, '해 뜰 날'을 히트하면서 가요계에 등극하였다.
그 후에 '정 때문에', '차표 한 장', '네가 뭔데' 등을 히트하면서 정통 트로트 가수로 완전히 자리 매김하였다.
송대관을 지금의 트로트 계 일류 가수 반열에 오르게 한 곡은 아무래도 '네 박자', '유행가'일 것이다.
이 두 곡의 메가 히트로, 송대관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으며, 트로트를 소비하는 기성세대 뿐이 아니라, 젊은 세대까지 인기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는 등, 그야말로 국민가수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의 큰 성공이 독이 되었는 지, 큰 빚을 지면서 생활고를 겪게 된다.
그럼에도 활발하게 가수 활동을 이어 가던 송대관이었지만, 평소 지병이 원인이었는 지, 그렇게 을사년 겨울날에 팔순을 채우지도 못 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송대관 개인의 인생을 평한다면, 성공과 실패의 극과 극을 오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풍운아'라고도 볼 수 있겠다.
사실, 가수로써 냉정한 평가를 하자면, 송대관은 가창력이나, 기교를 어필하던 가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무대 위에서는 살짝 박자가 틀어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폭발적인 고음의 이선희나, 다채로운 기교를 구사했던 조용필에 비해 딱히 특별한 게 없는 송대관이었다.
그럼에도 범국민적으로 송대관의 별세를 슬퍼하는 이유는,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슴을 적시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람들만이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한국인 고유의 정서적 가치, '限', '情'이 있다.
세대가 바뀔 수록 이런 우리의 특색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요새 댄스나 아이돌 중심의 음악이지만.
대한민국이 고도의 경제성장과 발전을 하면서도, 우리 안에 있는 고유한 정체성, 민족적 정서, 그런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음악이 바로 '트로트'인 것이다.
논밭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바뀌고, 초가집 대신 네모난 빌딩이 들어서고, 국토 곳곳에 고속도로와 터널, 철로가 깔렸다.
문화와 환경이 바뀌면서, 자연히 우리들의 정서가 바뀌었다.
서양의 록, 재즈, 팝 등이 마구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음악의 풍토는 완전히 서구화 되었다.
그럼에도 철저히 한국적인 소리, 한국인이 한국인임을 부인할 수 없는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존시킨 장르가 있었으니, 그 게 바로 '트로트'였다.
젊은 세대가 듣기에 참으로 옛날스럽고 촌스럽기까지 한 음악으로 취급당하면서, 오히려 우리네 한국적 정서를 잘 간직한 음악임에도 주류에서 밀려 나게 되었고, 트로트는 노년층, 동네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나 듣는 음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음반 매장에 가도 트로트 코너는 항상 뒷전이었고, 아예 트로트 음반을 진열하지 않은 곳도 많았다.
트로트는 뽕짝과 더불어, 그렇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싼 값에나 팔리는 비주류 음악이 되었다.
그럼에도 트로트는 중장년과 노년층을 중심으로 꾸준히 소비되어 오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왔고, 지나치게 서구화, 젊은 층과 자극적인 아이돌 중심으로 변질된 음악시장에서 가뭄 속 단비처럼 기성세대들의 오아시스 역할을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대관은 이런 트로트의 태동기부터 암흑기를 모두 겪으면서 트로트의 순수성을 간직하며 활동했다.
아무리 호텔의 유명 쉐프가 만든 고급 요리라도, 시골 할머니가 그냥 무심하게 차린 한 끼의 밥상보다 못 하다고 생각한다면.
출세해서 돈 많이 벌고,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보다는, 이심전심으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 뜻이 통하고, 오랜 세월 늘 함께해도 편한 사람이 낫다고 생각한다면.
근사한 해외여행을 하고 나서도, 고국에 돌아오면 그래도 역시 우리나라 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부인할 수 없는 한국 사람이다.
송대관은 참으로 특별하다면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송대관은 기교파 가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냥 평소 자기 편한대로 부르는데도, 그 자체만으로 이런 한국적인 정서를 고스란히 자아낼 수 있다.
그 어떤 곡을 불러도, 아무렇게나 불러도 송대관은 그 게 된다.
다른 가수들은 절대 송대관처럼 흉내를 내도, 송대관처럼 안 나온다.
송대관이 특별한 훈련을 해서일까?
송대관 자체가 한국적인 가치관과 정서로 충만했기 때문에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흉내를 낸다고 해서, 가창력과 기교 훈련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앞서 비유한 대로, 유명 쉐프가 아무리 연구하고 노력한다 한들, 시골 할머니의 손맛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시골 할머니는 늘 하던대로 아무 생각없이 청국장을 끓이고, 콩나물을 버무리고,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꺼내서 뚝딱 한 상을 차린다.
쉐프처럼 요리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고, 어찌 보면 무심하게 보일 정도이다.
그럼에도 그 평범한 한 끼를 먹어야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고 느낀다.
외식은 그저, 기분전환의 외식일 뿐이고.
가수 송대관은 그런 무심한 시골 할머니와도 같다.
정작 송대관 본인은 한국적이려 하지 않는데, 그냥 그 자체가 '한국인'이기에.
'限'이 담긴 한국적 정서를 애잔하게, 외국인은 이해하기 힘든 한국인 특유의 '情'을 걸쭉하게 뽑아 낼 수 있는 가수가 바로 송대관이었다.
참, 존재 그 자체로 트로트의 명인이라 해도 과언이 될 수 없다.
모르긴 몰라도, 송대관이 아닌 다른 가수가 송대관의 히트곡을 부른다면 정말 똑같이 대히트를 칠 수 있을까?
난 불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한국적 트로트를 구사할 수 있는 송대관이란 가수와, 한국적 정서가 가득한 트로트와 맞물려서 융화가 되었기에, 한국인의 가슴에 심금을 울리는 대히트가 가능했다.
이 건, 어떤 가수 '누구라도'가 아니고, 철저히 오로지 '송대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송대관은 그런 가수였다.
가장 한국적 정서를 본능적으로 잘 이해하고, 누구보다 가장 한국적 트로트를 구사했던 '트로트의 명인'.
얼마 전부터 트로트가 다시 재유행을 하는 듯 한데.
후배 가수들이 부르는 트로트는, 젊은 피를 수혈받은 트로트의 재탕에 불과하지, 그들이 진정한 한국적 트로트의 본질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많이 들어 보지도 않아서 이런 평가가 무리겠지만서도.
결국 하고픈 말이 뭐냐하면.
앞으로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 나훈아 세대의 트로트 가수들은 안 나올 것이란 것이다.
이 세대들은 급변하는 대한민국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했기 때문에, 현대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트로트가 가능했다.
요즘 트로트를 재유행시키는 세대들은 이런 선배 세대들의 그림자 밟기 식 답습일 뿐이지, 우리네 고유한 한국적 정서를 답습하고 성장해 온 세대가 아니다.
트로트의 명곡을 젊은 신인들이 불러서 새롭게 느끼는 것일 뿐이지, 지금의 우리 음악토양은 서양음악 중심으로 개편되었기 때문에, 이런 우리의 한국적 정서는 그 맥이 많이 약해졌다.
아예 끊긴 것은 아니지만, 이제 진국의 트로트를 작곡할 작곡가도, 트로트의 명곡을 진득하게 뽑아낼 수 있는 한국적 정서가 가득한 송대관 같은 가수도 찾아 보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트로트 가수 송대관의 별세는 우리 대한민국 국보급 손실과도 같다.
앞으로 후배 가수 중에 누가 이런 한국적 정서가 가득한 트로트를 부를 수 있을까?
지금처럼 한국적 정서가 철저히 단절된 현대음악 토양에서.
송대관의 별세는 단순히 한 가닥 했던 유명 가수의 별세가 아니라, 우리의 무형적 문화자산의 손실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무심히 끓여 줬던 청국장 한 숟갈의 정겨운 맛이 그리워 지는 것처럼, 국민들은 송대관을 그리워 할 것이다.
내가 제안컨데,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에서 송대관 추모공연을 열어야 한다.
동시대의 트로트 가수, 후배가수들이 어울려서 송대관의 명곡을 부르면서 우리 트로트를 잘 계승해야 한다.
이 공연은 트로트 가수 송대관의 '國葬'이 될 것이다.
국민가수의 장례식은 이렇게 치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