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인연의 책 한 권

by 속선

어제 책 한 권을 사서 들고 왔다.

그 책은, 한, 한 달 무렵 전에 우연히 발견하던 책이었는데, 벼르다가 어제 사서 들고 온 것이다.

그 책과의 인연은, '그 저자와의 인연'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복잡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내가 종로에서 장사를 하고 있을 때, 아르바이트생 한 명과 무단결근을 발단으로 임금을 안 주게 되었고, 그 것이 결국 그 아르바이트생의 친구를 대동해서 매장에서 소란을 부리다가 경미한 폭행으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약식기소되어 벌금 30만 원이 구형되었다.

어찌저찌 난생 처음으로 구약식 재판을 받으러 갔고, 그야말로 높으신 검사님, 판사님을 그 때 처음 봤던 것 같다.

어떤 피고인은 조사 때와 다르게 재판장에서 상반된 진술을 했나, 화난 검사가 마이크에 대고 호통을 치니까, 참 무섭더라.


내 차례가 왔다.

이런저런 거짓말과 핑계를 댔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었다.

그 건,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원론적으로는 그러면 안 되지만, 그래야 내가 받은 것을 되갚아 준다고 생각했기에, 나를 억울하게 했으면 상대방도 억울함으로 되갚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거기서 싸움이 일어난 건 사실인데, 때리진 않었어요."


높은 법대에 근엄하게 앉아 있는 법관이 답한다.


"그럼, 그 피해자와 목격자가 과연 없는 거짓말을 가공해서 진술을 했느냐는 거죠."


"그 목격자(남자친구)는 자기 여자친구니까 당연히 편을 들겠죠."


거듭 억울함을 토로하자, 사실 내 잘못이 맞지만, 검사가 정식재판을 청구하라고 한다.

그 밖에도 이런저런 신문이 오갔지만, 법관은 "어이구, 뉴스에 날 일 있어요?"하면서 재판 진행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답한다.

결론은 나는 정식재판이 뭔지도 몰라서 그냥 벌금을 내기로 결심했다.

지금에사 후회되는 것은, 차라리 내 잘못을 검사나 법관에게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감경 받을 것 그랬나 보다.

초범인 데다, 사안 자체가 경미해서 잘 하면 감경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 때 당시엔 경찰서에 불려 나간다거나, 재판, 더군다나 공판을 받는 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 가는지도 모르겠고, 모든 것이 다 막연하고 무섭기만 했다.

애초에 내 죄는 내가 제일 잘 알기도 했고, 벌금 30만 원, 큰 돈은 아니었기에 그냥 내기로 했다.


글쎄, 나처럼 재판을 받는 사람들 심정은 다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

재판 당사자, 검사, 법관의 이름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 할 것 같다.

나 역시도 당시 법관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고, 때때로 근황이 궁금해서 검색해 보기도 한다.

벌금 30만 원으로 법관에게 섭섭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검사가 구형한 것에서 시작, 내가 정식 재판 포기해서 확정된 것을, 법관을 야속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니.


여튼, 그 때 재판을 맡은 그 법관은 20년 법관직을 퇴직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다는 근황을 알게 되었다.

대형 로펌에 들어 가지 않았지만, 동업자와 고향에서 개인 사무실을 차린 듯 보인다.

또, 어느 학원에서 초빙되어 학생들에게 공부 비법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도 보았는데, 거기서 그 법관이 공부를 했다던 교재가 바로 '이재상' 교수 저, '형법총론'이었던 것이다.

아주 전형적인 모범 교과서처럼 생긴 그 책은, 나중에 알고 봤더니 수많은 법학도들의 형사법 바이블과 같은 교재였으며, 이재상 교수는 형사법 학계 내에서 최고의 권위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인연이란 게 참 변화무쌍하다.

피고인이 되어 만난 법관이 공부하던 교재를, 이제는 내가 법학도가 되어 그 저자의 교재를 공부하려 하다니.

물론, 그 법관은 이제 퇴직하였으며, 수많은 피고인을 일일히 다 기억하지 못 할 뿐더러, 약식기소 때 채 10분 가량 만난 당시 피고인은 아예 기억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글쎄, 나는 어쩌면 그 법관을 개인적 우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법관이란 존재만으로.


'형사소송법 제10판', '이재상 조균석'


책장을 대충 넘기면, '소송절차이분론', '체포와 구속', '공소제기의 효과', '자백배제법칙', '전문법칙' 등 수사와 공판에 대한 학문적 내용들로 가득하다.

쪽 수는 900 쪽이 넘는 두껍디 두꺼운 책이다.

반드시 마스터해야겠다는 생각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시간나면 틈틈히 훑어 볼 요량으로 샀다.

또, 마침 중고서점에 저렴하게 나온 게 있길래.

나는 이제 첫 기말고사를 마쳤지만, 만약 내가 나중에 법조인이 된다면, 벌써 형사 분야에 투신하기로 다짐했다.

범죄와 관련한 형법이 싫기는 하지만, 다이나믹한 재판의 백미는 역시 공판이 가지는 매력이기도 하고, 또 실무적으로는 변호사 수입도 괜찮다고 하기에.


"변호사님, 저도 이 책을 틈틈히 공부해서, 언젠가 당신처럼 멋진 법관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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