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공부를 시작하며

by 속선

사이버대학교에 진학하여, 아직 정식 개강 전이지만 법학과목들의 강의영상을 일찌기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여름부터 시작한 행정법과 민법공부의 기초가 있었던 까닭에, 훨씬 수월하게 강의가 들려서 다행이었다.

형법은 처음이라 그런지, 새롭게 들려서 진도가 빠르다.

내용들은 하나같이 범죄에 관한 어두운 내용이지만서도.

한 사람의 행위에 대해 범죄냐, 아니냐, 범죄라면 어느 정도 형벌을 주어야 하느냐에 대한 매우 세분화된 이론 체계와 죄형법정주의를 지키기 위한 법학자들의 고뇌가 느껴지는 과목이었다.


사이버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나의 일상도 바뀌었다.

낮의 일과는 차치하고서라도, 하루의 시작은 강의로, 마지막 일과 또한 잠이 올 때까지 강의로 마친다.

정말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교 입학 전의 심심풀이로 법학강의 영상을 보던 것과 다른 양상이 되었다.

물론, 모든 강의내용들이 다 흡수되는 것은 아니다.

제법 지루하고 집중이 안 되는 시간이 더욱 많아서 그냥 흘려 보낼 때가 많다.

그렇다 할 지라도 꾸준히 반복해서 법학에 대한 장벽을 깨는 것도 진전은 진전이기에, 안 들리더라도 강의를 틀어 놓는다.


처절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일까.

그로 인해 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도회근 교수의 헌법 강의를 재미나게 '즐겨' 들었던 것이, 지금 대학교의 헌법 강의는 오히려 잘 들리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민법 총칙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강의하는 교수가 다를 지라도, 같은 과목을 처음 들을 때보다 지금 다시 접하는 강의가 더 수월하게 들려야 함이 마땅하다.

헌데, 분명 전보다 익숙한 내용과 이미 이해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강의가 잘 들리지 않는다.

벌써부터 성적이나 시험에 대한 강박이 커서인 듯 하다.


입학 전에 재미로 강의를 들었을 때는, 나를 옥죄는 요소는 없었다.

시험을 치를 이유도, 곱씹어서 집중해서 들어야 할 이유 또한 없었다.

듣고 싶을 때 듣고, 그만 듣고 싶으면 끄고, 들리면 들리는 대로, 안 들리면 안 들리는 대로였다.

그런데, 입학해서 대학생 신분이 된 이후부터는 달라졌다.

나에게는 시험과 성적이란 허들이 주어졌고, 그 장애물들을 넘지 못 하면, 졸업은 물론이거니와, 학사 학위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제부터는 교재의 내용을 하나하나 이해해야 하고, 정신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강의가 잘 들려서 이해가 잘 될 때는 기분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어두워 진다.


"시험 문제에 나올 텐데, 집중이 안 되고 내용이 이해가 안 되네......"


강의를 들으면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뭐, 아직 정식 입학도 하기 전이지만.

무엇을 외워야 하고, 이러이러한 것은 어떤 원리에 의한 것을 이해해야 하고, 무엇이 시험문제에 출제가 되고.

그런 강박이 내 안에 자리하기 시작한 순간, 나는 더이상 법학을 예전처럼 즐거이 들을 수 없고, 점점 암기하는 '기계', 문제 잘 푸는 '인공지능 로봇'이 되는 느낌이었다.

문제를 푸는 스킬, 문맥 상의 맥락, 눈치, 틀린 것은 걸러 내고 유력한 지문만 골라내는 요행이 늘었다.

내가 점점 공부하는 '기계', 시험문제 잘 푸는 '기술자'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처음 법학 강의를 접할 때는 '바보'에서 '현자'가 되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의 대학생이 된 나의 법학 강의는 거꾸로, '현자'에서 '바보'가 되는 느낌이다.

사회가 성적을 요구하고, 학사 학위를 요구하니, 그 대열에 끼고자 하는 나도 거기에 따라가야 한다.

그런 사회의 경쟁과 결과물 중심의 가치판단이 이런 '공부 기술자'를 양산한 것은 사실이지만, 객관적, 보편적인 기준으로 개인의 역량을 측정하는 지표로 성적과 학력만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창의성 개발과 진정한 학문 탐구의 길로 인도하는 길과 반대의 방향을 취하는 것은 분명 현 교육제도의 문제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그러한 불합리하면서도 천편일률적인 교육제도가 원동력이었다는 점도 부정하지 못 한다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런 교육제도를 긍정하고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아무튼, 이런 느낌이 드는 것 또한 공부의 한 과정이겠거니 싶지만서도.

나에게 법학 전공과 학사 학위는 사회생활과 직결된 '생업'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학우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처지에서는 난 '이 게' 아니면 정말 안 된다.

그래서일 것이다.

'내 처지'이기 때문에.

진정한 실력을 바탕으로 한 호성적을 내고 싶은데, 내가 놓인 처지에는 일단 어떻게든 학사만 졸업하고 보자는 식의 마음이 더 큰 것은 사실이다.


내일 아침에는 어제 밤에 듣다 만 헌법 강의를 마저 듣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헌법강의는 특이하게도 다른 과목보다 문제 수가 더 많다.

틀린다 해서 아직 성적에 반영되지 않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해서 풀어야, 내 진짜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한 문제, 한 문제, 적당히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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