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측하는 '우리법연구회'의 의미

by 속선

민법을 공부하면서, 법학 교수는 우리 법 체계가 일제시대 때 그대로 계승되었다는 것을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도 법률용어 중에 어려운 한자 단어, 우리 말에 쓰이지 않는 특이한 표현들이 많은 것은 필시 일본의 사법체계와 용어를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리라.


'피고의 방화로 인해 원고의 곡물창고가 소훼(燒燬)되었고.',


'원고는 원고의 명의로 된 건축물이 피고의 고의적 파손으로 인해 멸실(滅失)되었음을 주장하나, 우리 민법에서 건축물로 인정하는 형태, 기둥, 벽면, 지붕 등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원고와 피고는 지적 경계가 없는 토지 위에 상린(相隣)하고 있다.'


우리 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 난 후부터도, 조선시대로 회귀한 게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공화국이 출범하였다.

그에 따라 당연히 사법체계도 성립되었으나,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운영해 보는 사법체계이기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 당시 사법체계를 고스란히 답습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광복 직후 판결서에는 여러 일본적인 표현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특히, 우리 민족은 애초부터 쓰지 않는, 일본 민족들이 쓰던 한자 표현들.


그 뿐이랴.

아예 민법이나 형법 등도 일본이 쓰던 조문을 우리 식대로 바꿔 쓰지 못 하고, 거의 고스란히 차용해서 쓰다시피 했을 것이다.

그럼, 판결 또한 일본인들이 해석하고 판결했던 것을 그대로 적용해서 판결했을 수 밖에.

광복 직후에는 이렇게, 피식민 당시에 일본 사법부가 쓰던 판결서를 참고해서, 일본 흉내내는 식의 판결이었다고 한다.

민법을 강의하던 그 교수도, 이런 부분에서 참 부끄러운 역사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법연구회'란 명칭도 이런 아픈 역사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그런 짐작이 문득 들었다.

뭐, 진보 단체라고 하니, 법학 내의 일제의 잔재에 대한 일본에 대한 반감 등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아픈 식민지배의 사법적 관행을 타파하고, 우리 식의, 독립된 대한민국의 자주적 사법체계와 문화를 만들어 보자, 뭐 이런.

더 이상의 일본식 잔재는 걷어 내고, 우리가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사법체계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우리법연구회'란 명명을 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만, 바라건데.

'우리 법'을 연구하는 것은 백 번, 천 번을 찬성할 지라도, '서 쪽 법'을 연구하는 것은 단념했으면 한다.

'우리 법'은 말 그대로 '우리' 법이지, '동 쪽 법'도, '서 쪽 법'도 되어서는 안 된다.

또, '우리'란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뜻해야 하는 것이지, '연구회'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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