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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사람 Apr 01. 2019

사랑과 시대의 반역

나의 영원한 배우, 장국영

* 영화, <패왕별희>의 스포가 담겨 있습니다. 




“몰랐지? 나는 전생에 경극배우였단다.”



장국영은 <패왕별희> 촬영에 들어가기 두 달 전, 경극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단 두 달이었지만 그의 학습 능력은 대단했다고 한다. 그가 경극 씬을 아름답게 마칠 때면 그의 경극 메이크업을 담당했던 송소천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때 장국영이 송소천에게 건넨 농담이다. 신분과 직위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따스하게 대했다는 장국영의 선한 모습이 그려진다. 



따스한 봄이 오기 전 찾아오는 슬픔이 있다. 4월 1일이 다가오면 그의 출연작, <패왕별희>를 본다. 나의 영원한 배우, 장국영을 홀로 추모하는 방식이다. 그가 남긴 영화 작품과 음반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았다. 몇 주 전, 회현 지하상가 LP 가게를 누비며 장국영의 앨범을 찾았더니 주인 분께서 대략 4장의 앨범을 추려서 보여주었다. 각 LP마다 붙은 만만치 않은 금액이 장국영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여전하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아 기뻤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많은 것 중, 내가 아끼는 것은 <패왕별희>와 인터뷰에 담긴 그의 말들이다. 올해도 그를 추모하며 <패왕별희>를 보는 세 시간여 동안 연달아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패왕별희의 뜻은 초패왕과 우희의 이별이다. 장국영은 영화 속에서 처음, 도즈라는 남자 아이로 등장한다. 혹독한 경극 훈련을 견디지 못한 도즈는 친구와 함께 도망치다가 우연찮게 경극을 보게 된다. 자신을 힘들게만 했던 경극의 아름다운 결실을 눈앞에서 목도하며 도즈는 눈물을 흘린다. 그와 함께 도망친 친구도 “얼마나 맞았으면 저렇게 잘 하는 걸까?” 하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다. 도즈는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얼마든지 맞아도 좋으니 경극 배우가 되겠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는 혹독한 시간들을 견뎌 ‘패왕별희’에서 초패왕의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우희 역할을 맡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청데이로 불린다. 청데이는 초패왕을 연기하는 동성 친구 샬롯에게 우희와 같은 연정을 품게 된다. 청데이는 아름다움을 연마하는 데 있어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극 중에서의 삶을 현실로까지 끌어오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 중국의 격변하는 시대에 맞춰 시간은 계속 흐른다. 그리고 경극의 위치는 시대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패왕별희의 두 주인공은 스타 대접을 받다가도 역적으로 몰려 처형을 앞두는 지경에도 이른다. 영화의 마지막은 이제 경극의 시대가 지난 현실이 배경이다. 더 이상 사랑받지 않는 경극의 두 배우가 한 체육관에서 초라한 조명에 의지해 오랫동안 연기한 패왕별희를 연습한다. 그때 상대배우 샬롯이, 장국영을 바라보며 '청데이'라는 이름을 외친다. 그리고 잠시후, 극 중 장국영의 진짜 이름 '도즈'를 부른다. 무대에서의 삶과 현실을 경계 짓지 않았던 그에게 본명이 날아들고 영화는 끝이 난다. 나는 청데이가 도즈로 불리는 그 장면이 애잔해서 늘 눈물 흘리게 된다. 



나는 이 아름다운 미쟝센들을 보며 장국영을 추모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청데이와 도즈, 그리고 장국영 세 사람이 모두 비현실적인 인물처럼 느껴진다. 안개에 가려진 무언가가 날이 밝으면 형체를 채 알아보기 전에 사라지는 어떤 신기루 같은 존재. 장국영이 내겐 그런 배우였다. 그의 실제 삶 또한 신기루처럼 사라질 거란 생각은 감히 해보지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추측해보면 그는 대스타답지 않게 살갑고, 사랑을 성실하게 실천했던 사람이었다. 장국영은 패왕별희 관련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청데이를 연기하고 싶다. 하지만 그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랬던 그가 이 세상을 너무 아픈 방법으로 등을 졌다. 그의 삶에 반짝이던 수많은 날을 뒤로하고 떠나려한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장국영은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장국영이 부른 노래 중 ‘당애이성왕사’라는 곡이 있다. 그 곡의 가사는 지금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미리 건넨 위로처럼 들린다.


‘내일은 잘 지낼 수 있도록 당신도 힘들게 다신 제 소식을 묻지 마세요.’




감독은 영화 <패왕별희>의 주제를 사랑과 시대의 반역이라고 했다. 

장국영의 삶도 이 주제와 동떨어지지 않은 것 같아 영화를 보며 참을 수 없는 슬픔에 잠긴다.

햇수를 거듭해 다시 찾아오는 4월 1일. 그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영화계의 큰 대목이 되어 있을 터다. 

그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면, 가정 하에 많은 것들을 어림짐작해본다. 




장국영, 당신이 지금도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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