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작되어 버린 2026학년도를 맞이하며
나의 영원한 오빠들에게 또다시 기다림을 부탁하며
2025년 작년 한 해를 통틀어, 내가 다녀왔던 모든 공연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god의 <ICONIC BOX> 콘서트를 꼽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유년 시절 (팬클럽만 가입하지 않았을 뿐이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아했던 아이돌은,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속에 영원하다.
작년 12월 5일 금요일, 가방 안에 하풍봉(!)을 넣고 하늘색 셔츠 위에 좀 더 진한 연청색 뷔스티에 원피스를 덧입고 출근하던 길을 기억한다. 금요일 오후 수업쯤 되면 일주일치의 피로가 온몸을 감싸고는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러한 피로감 속에서도 설렘과 기대감이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그러다 참지 못하여 (어쩐지 티키타카가 잘되어서 때때로 사담을 나누게 되던) 어떤 반에서는 "선생님 이따 첫사랑 보러 간다!"라고 자랑까지 했더랬다.
TV 앞에 앉아 '뮤직뱅크'로 오빠들을 보았던(동시에 부모님의 눈치를 약간씩 보며 너무 좋아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10대 소녀가, 30대의 직장인이 되어 그 오빠들을 두 눈으로 보러 간다니! 1년간 고생했다며 스스로를 치하하는 선물로 이만한 것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같은 시절을 함께 살아 낸 무수한 소녀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나는 같은 마음으로 눈을 반짝이며 앉아 있는 그들을 보는 것이 어쩐지 감격스럽고 뭉클하다. 그리고 그들 속에 있는 나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는 것은 무대를 지켜보는 우리도, 무대 위의 오빠들도 마찬가지일 것을 알아 어쩐지 이런 부탁을 하기가 조심스럽고 약간은 망설여지지만… 어쩔 수 없다. 오빠들, 올해도 고생 좀 해 주세요. 힘드시겠지만 건강 관리 잘하셔서 올 연말에도 콘서트 부탁드립니다.
아, 그것도 아시나요? 제가 올해 맡을 아이들의 명단이 담긴 학급 명렬표를 뽑을 때, "저는 god 팬이니까요."라는 말을 덧붙이며 하늘색 포스트잇이 붙은 종이를 뽑았다는 걸요. 설마 올해가 너무 힘들지는 않겠지요? 혹시 모르니까 올 연말에도 콘서트 꼭 좀 부탁드립니다, 제발요.
아직 프리다이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부모님과 함께 필리핀 보홀섬과 세부섬에 일주일 정도 여행을 다녀왔었다. 1년 반만의 필리핀 재방문이었다. 달라진 점은 (프리다이빙 버디였던 친한 동료 선생님과 함께한 것이 아니라) 한 분은 끼니를 제때 챙겨야 되고 한 분은 끼니쯤 걸러도 되는, 한 분은 알고 보니 바다를 상당히 무서워하고 한 분은 알고 보니 바다를 심히 좋아하는, 너무도 다른 두 어른과 함께였다는 것. 양쪽의 중간 어디쯤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다 보니 마음이 마냥 편치 않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다에 가 있었다. 다시, 바다에 도착한 것이다.
원래 계획은 부모님과의 여행 전에 프리다이빙 레벨 2를 취득하는 것이었지만, 졸업식까지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 방학 직후에는 심신이 퍼져 버리면서 강습 자체를 받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사실 이퀄라이징도 여전히 되지 않는 상태였기에, 강습을 받았어도 의미가 없었을 터라 더 애쓰지 않은 것도 있다.
여하튼 프리다이빙 레벨 2 없이 방문한 두 번째 바다에서도, 바다는 바다였다. 바다거북은 여전히 유유히 그리고 고고히 바닷속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투명한 에메랄드빛부터 짙은 검은빛에 이르는 바다의 무궁무진한 색채도 여전했다. 달라진 것은 오직 나였다. 이제는 더 이상 수면과 가까운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변해 버린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처음 목도한 바다에서 그렇게나 무한한 경이로움을 느끼며 수면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꼈던 내가 말이다.
자책하지는 않으려 한다. 이미 깊이 잠수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 버린 스스로를 탓하고 싶지도 않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도대체 언제 이퀄라이징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깊은 바다를 나의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바쁜 3월이 지나고 나면, 아주 가끔이라도 나의 오래된 버디와 함께 잠수풀장을 찾는 상반기를 보내려고 한다. 깊은 바다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깊은 바다를 꿈꾸는 편이 나에게는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나는 아직 프리다이빙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번 필리핀 여행 때에는 꼭, 바다거북과 함께 수면 저 아래에서 함께 유영하고 싶다.
퐁네프 다리 위를 걷는 날을 꿈꾸며
프랑스어 학원을 그만둔 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연약한 열정은 여전해서, 가끔 프랑스어가 듣고 싶은 날이면 프랑스 영화나 예능 등을 찾아보며 겨울방학을 보냈다. 그리고 어제는 공식적인 2025학년도의 마지막 날을 맞아 아주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았다. 1992년에 개봉한 <퐁네프의 연인들(Les Amants du Pont Neuf)>*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말이다.
* 알고 보니 이 영화는 2014년에도 한 번 재개봉을 했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2014년과 2026년, 말띠 해에만 재개봉을 해서인지, 같은 말띠인 나로서는 꼭 보아야 할 것 같다는 운명론적(?)인 느낌을 받은 것도 영화를 보게 만든 이유 중 하나이다.
2시간 가량 <퐁네프의 연인들>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의 머리는 참으로 어질어질하고 얼얼했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꽤 오래 고민했지만, 스스로도 생각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게 사랑인가 싶다가, 어떤 장면에서는 사랑인 것 같다가, 무슨 저런 광기가 다 있나 싶다가, 그런데 왜 자유로워 보이는지 의아하다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다가, 또 이해가 될 것도 같다가… 이렇듯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는, 그렇지만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그래서 만약 이후에 또 재개봉을 한다면 다시 보러 가고 싶은 영화였다. 특히 아래의 장면은 사랑 고백을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어서, (분명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관계를 괴이하다고 느끼며 보고 있던 와중에도) 무언가 마음이 탁 하고 일순간 풀리는 느낌이 들었었다.
Quel qu'un vous aime. Si vous aimez quel qu'un vous lui dit demain "le ciel est blanc".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하늘이 하얗다"고 말해 줘.
Si c'est moi je réponds "mais les nuages sont noirs".
그게 만일 나라면 나는 "(하지만) 구름이 검다"라고 대답할 거야.
On saura comme ça qu'on s'aime.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거야.
그러나 이렇게 마음을 건드리는 장면에서도 '오, "le ciel est blanc"이라는 문장은 해석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아무래도 프랑스어에 대한 배움을 느리지만 끝끝내 지속해 나가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 된다면, 다음번 말띠 해에도 다시금 <퐁네프의 연인들>이 재개봉한다면, 그때에는 이 영화 속 프랑스어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잘 듣고 더 많이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게 된다면, 그때는 꼭 퐁네프 다리 위를 꼭 걸어 보리라! (더 이상 누군가와 함께할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도, 상상하지도 않기로 한다. 그러면서도 왜 누군가에게 "mais les nuages sont noirs"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