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에세이 4월호 기고 후기입니다.
작년 겨울, 아마추어로 글을 쓰며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을까?' 스스로를 의심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인들에게 자랑하기엔 부족한 글이라 생각했기에, 괜히 민망해서 가족들에게도 내 글을 비밀로만 하고 지내던 무렵이었습니다.
날이 추워서 더 그랬을까요. '과연 이렇게 계속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시간 낭비는 아닐까'라는 걱정에 사로잡혀 마음까지 차갑게 얼어붙던 어느 겨울날. 거짓말처럼 〈월간에세이〉 편집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부끄럽게도 〈월간에세이〉라는 잡지는 오가며 몇 번 스쳐 보았을 뿐,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 따로 찾아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곳은 1987년 창간 이래 단 한 번의 결호 없이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전해온 대한민국 대표 정통 수필 잡지 라고 합니다. 심지어 2026년에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콘텐츠잡지로 선정될 만큼 깊은 문학적 전통과 권위를 인정받는 곳이었죠. 수많은 작가분들이 머물렀던 이 귀중한 공간에 저의 누추한 글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제 글을 좋게 봐주시고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과 동시에, '과연 내가 이 귀한 지면을 채울 자격이 있을까' 하는 떨림이 앞섰습니다. 평소 픽션만 지어내던 터라, 진짜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몇 날 며칠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다른 작가님들의 글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부족한 실력에 자책하며 쓰레기통만 배 불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보다 못한 아내가 골라준 원고 하나에 집중하여 고치고 또 고친 끝에 마침내 보낸 원고. 그날부터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나날을 보내며 잡지가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답니다.
사흘 전 퇴근길, 우편함에 꽂혀 있는 잡지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또 뭘 산 거야?"라는 아내의 장난 섞인 핀잔. '내가 진짜 뭘 샀더라' 불안한 마음으로 기억을 더듬던 중, 귀에 들어온 "어, 잡지네?"라는 아내의 말.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예쁜 분홍색 표지에 적혀 있는 다섯 글자, 〈월간에세이〉. 아내의 손에서 낚아채듯 받아 목차를 확인하니 정말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솔라담'이라는 제 필명이 말이죠.
"여보, 이거 봐봐!" 소리를 지르며 찾은 내 글이 적힌 페이지.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던 나의 문장들이 단단한 종이 위에 활자로 박혀 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제 글 옆에 나란히 자리 잡은 예쁜 삽화였습니다. 글의 분위기에 딱 맞는 따뜻하고 감각적인 그림이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제 글이 잡지라는 옷을 입고 이토록 근사하게 변신할 수 있다니, 편집부의 세심한 배려에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예전 대학 강의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프린트된 모나리자에는 낙서를 할 수 있어도, 원본 앞에서는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것은 '아우라' 때문이다." 20년 전에는 그저 막연하게만 들렸던 그 아우라의 정체를 이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지면에 인쇄된 제 글은 분명 원본은 아닐지라도 어떤 '기운'이 있었습니다.
'글을 계속 써야 할까?'라는 고민을 한 방에 날려주고, 부끄러워 숨기기만 했던 '작문'이라는 취미를 온 가족 불러 모아 자랑하게 할 정도의 당당한 기운. 부끄럽다고 동굴 속에만 파고들던 나 자신을 꺼내주던 그 기운. 아, 이게 바로 그 '아우라'구나 싶었습니다.
오늘은 아침에 이르게 핀 벚꽃을 봐서 그럴까요. 거울을 보면 입가에 걸린 미소가 아직도 내려올 줄을 모릅니다. 사무실에서도 동료들이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묻지만, 아직 거기까지 자랑할 용기는 생기지 않았나 봅니다. 그냥 '앞에 꽃이 폈더라고요. 허허.'하고 웃어넘기고만 있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조금 더 당당해질 그런 날도 오겠지요.
누군가 제게 그랬습니다. "책은 읽는 게 아니라 만지는 것"이라고요. 화면 안에만 갇혀 있던 텍스트가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느끼며, 온종일 잡지를 만지고 또 만져봅니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되새기면서도, 아직 제 페이지는 쑥스러워 차마 다 펴보지 못하는 것을 보니 저는 여전히 갈 길이 먼 모양입니다.
이번 기고는 작가로서 스스로를 다잡게 된 축복과도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귀한 지면을 내어주신 편집장님과 〈월간에세이〉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행복한 기억을 동력 삼아, 앞으로도 즐거운 글을 써나가는 '솔라담'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