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결국 공부를 시켜야 하는 거야?

영화 '원더'

by 타샤할머니

안면 기형을 가진 약해 보이는 아이가 5학년 때 처음으로 학교에 가서 차별과 편견에 상처 받을 때 정말 가슴 아팠다.

하지만 헬멧을 벗고 진짜 자신을 마주하는 용기와 놀림을 받으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친구들을 사귀는 모습에서의 그는 정말 강한 아이 었고 이렇게 키운 가족과 엄마의 역할에 집중이 되는 건 당연했다.

아니 아이가 어떻게 저 상황에서 이토록 강할 수 있는 걸까? 어떻게 시련을 겪어도 이 가족은 유쾌할 수 있는 걸까? 영화 속 이 아름답고 화목한 가족을 보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힐링이 되었다.

넌 못생기지 않았어, 네게 관심 있는 사람은 알게 될 거야


학교에서 친구들의 시선에 상처 받은 어기에게 이렇게 말하는 엄마.

내 엄마니깐 그렇게 말하는거잖냐고 울며 말하는 아이를 보는 나도 맘이 찢어지는 거 같았다.

저 상황이라면 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하다. 나도 어기 엄마 같은 훌륭한 엄마가 되고 싶다.

물론 지금의 내 상황에서 보는 어기 엄마는 사람 자체가 멋있는 여성이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포기했다가 어기가 학교를 가면서 박사 논문을 완성해내고 어기가 주인공인 그림이 아주 이쁜 동화책을 쓴다. (솔직히 말하자면 커리어만으로도 충분히 부럽다.) 어른이 겪기에도 힘든 경험을 하는 어기에게 순간마다 크게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차분하게 대하는 모습은 특히 더 닮고 싶다.

어떻게 하면 장애가 있는 아이를 저렇게 위트 넘치고 똑똑하게 키울 수 있는 건지 정말 그 힘이 위대하다.

특히나 보통의 아이들보다 똑똑해서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보란 듯이 이겨 버릴 땐 카타르시스마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만약에 어기가 그렇게 공부를 잘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주변을 변화시키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26번의 성형수술을 거치고 남다른 아픔으로 또래보다 성숙한 내면을 갖고 있지만 똑똑한 엄마의 홈스쿨링 덕분으로 똑똑한 어기였기에 더 존중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를 낳기 전에는 확고했다. 내 아이들은 원치 않으면 공부를 안 시키겠다고.

내 아이들 스스로 원하는 공부를 찾아서 하길 바랬다.

내가 공부머리가 없는데 자식은 그렇게 하길 바라면 안 되고, 나도 힘들었고 그렇다고 공부로 성공했다고도 할 수 없는데 가장 행복해야 하는 시기가 공부 때문에 힘들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우리나라 사교육은 거의 학대 수준이다.)

하지만 앞서거나 뒤쳐지거나 할 것도 없는 다섯 살 아이가 친구들에 비해 모자라진 않구나 안도하며 한 번씩 놀이할 때 슬쩍 연관시켜 가르치기도 하고 항상 공부하며 책 읽는 모습의 엄마는 아니더라도 티브이 앞에 퍼져있는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 한다.

특히 이런 영화같이 현실과 와 닿는 계기가 있으면 혼자 속으로 심하게 갈등을 겪는다. 한마디로 다 내 탓이 될까 봐 두렵다. 어기의 경우 모든 공이 엄마에게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 마지막에 어기가 상을 받을 때 엄마의 표정에는 모든 게 담겨 있었다. 나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말았다. 어기의 엄마는 그동안의 힘들었던 시간과 자식에게 쏟은 노력을 모두 보상받는 것 같았다. - 적어도 내가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내 아이들이 더 잘 될 수 있는데 못되고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신나지 않은 인생이 되는 게 정말 무섭다.

그리고 미안해하는 나를 괜찮다며 위로하는 아이들의 얼굴이란... 정말 끔찍하다.

이제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무조건 공부에 관련된 학원은 절대 보내지 않겠다고 그나마 좀 수그러들었다.

(중학교 그 이후라도 방관이 아닌 것뿐이지 강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독일이 아니다. 이민을 가지 않는 이상, 이 나라에 계속 사는 이상 나 혼자가 아니라 내 자식마저 이상한 취급을 당하게는 할 수 없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이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우리나라에서 살더라도 적당히 잘 살기를 바라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못해서 겪는 아이의 상처와 아이가 공부를 잘해야 해서 힘든 것 둘 다 싫은데!!

다행히 이런 나의 고민은 아이들이 좀 더 클 때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부터 시. 작. 해서 그 시간을 좀 더 버는 것으로 일단락되고 그렇게 맘을 좀 놓는다.

아이에게 말로 뭔가를 강요하기보다 항상 어른이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말은 너무나 흔한 말이지만 너무나 맞는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습자지처럼 부모를 흡수하는 아이들을 볼 때는 놀라움을 넘어서 무섭다.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해

어기의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모든 아이들에게 한 말처럼 아이가 커가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자주 생각한다.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가 한 모든 선택이 나를 만든다는 말처럼 내 선택에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