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큼은 나처럼 채식주의자 하면 안 될까?
영화 '옥자'
간식으로 삶아준 달걀 껍데기를 까면서 첫째가 말한다.
"빠지직 빠지직 오리가 나온다 빠지직 빠지직~ 엄마 껍질을 다 까면 오리가 나와요?
빠지직 빠지직 병아리가 나온다 빠지직 빠지직~"
생선을 구워 먹는 날에도 "이 물고기는 누가 잡았어요? 마트에서 샀어요?"
제일 심한 날은 고기반찬을 올려놓는 날이다..
"엄마 이거 무슨 동물이에요?" 첫째가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죽었겠다, 아팠겠다..." 할 때마다
옥자를 본 이후 영화의 장면들이 자꾸 떠올라 비위가 약한 나는 밥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하필 첫째를 임신했을 때 착한 돼지농장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아마 채식주의자 엄마가 그 농장에서 직접 체험을 하며 아이들의 육식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돼지는 도망 다니다 붙잡혀 거세를 당하고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죽기도 했다.
무엇보다 새끼들에게 뭘 할지 아는 것처럼 화내며 날뛰고 아기돼지들을 본능적으로 지키려는 엄마 돼지의 모습, 그리고 아파하는 새끼들을 어쩔 줄 몰라하며 돌보는 엄마 돼지를 볼 땐 거의 오열을 했다.
좋은 환경에서 가축을 기르는 이런 농장에서조차 거세는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과정이라며 안타까워하던 농장주의 모습에 망연자실했다.
이 정도에도 나는 충격이 큰데 다른 곳은 얼마나 더 잔인할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본 영화 옥자는 나에게 엄청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10년 동안 같이 산에서 뛰어놀며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지낸 슈퍼돼지 옥자와 순수한 산골 소녀 미자.
함께 감도 따먹고 계곡에서 놀다 옥자 배 위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며 둘만의 언어와 눈빛으로 교감하는 장면들은 아름다운 자연의 영상미와 어우러져 힐링이 되면서도 뭔가 찡... 하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둘의 모습이 더 끈끈하게 보일수록 옥자의 어두운 앞날이 예상이 되어 마냥 즐길 수가 없다.
거대한 몸과는 반대로 여린 성격의 마치 아기 같은 옥자는 인간들의 강한 욕망 속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동물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부각시키고, 결국 최고의 환경에서 자라 최고의 돼지가 되어 결국 미국으로 끌려간다.
옥자를 구하고야 말겠다고 위험을 무릅쓰는 미자의 순수한 모습은 탐욕스러운 어른들의 캐릭터와 대조되면서 더욱 안타깝고 절박한 심정으로 만든다.
이 슈퍼돼지 구출극은 저마다 색다른 개성의 캐릭터들과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위트로 너무 무겁고 진지하지만은 않다. 아니 영화라고만 생각하면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상상 가능한 장면과 스토리 자체가 주는 메시지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고 강아지를 정말 키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절대 키울 수 없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키우던 강아지에게 안 좋은 일이 닥칠 때 딸이 받을 상처가 두려웠던 거다.
옥자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은 채 미자와 얼렁뚱땅 헤어지길 바라는 할아버지가 더 애잔하게 보인 이유다.
며칠 시골집 앞마당에 강아지가 와있던 적이 있다.
어린 나는 밤에 낑낑 거리는 강아지가 추운 거 같아 불쌍하게 느껴져 몰래 방으로 델고 들어와 이불을 덮이고 재웠다가 담날 엄마한테 호되게 혼났고 그 어린 눈에도 동물원에 가면 동물들이 갇혀있는 게 불쌍하단 소리만 하다 왔다.
동물을 사랑하고 평소에도 감정이입이 잘되는 나는 늘 딜레마에 빠진다.
잔인하고 비윤리적인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경멸하면서도 결혼을 하고부턴 직접 식재료를 구입해 음식을 만드니 그 딜레마는 더 가까이에서 나를 괴롭힌다.
마음만은 채식주의자이지만 맛도 좋고 영양적으로도 그렇고 육식을 아예 끊을 수는 없는 현실.
꼭 그렇게 싸게 많이 먹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조금이라도 윤리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동물복지 달걀, 고기들을 구입하는 것뿐.
그러면 비싸서라도 지나치게 소비하지 않게 된다.
자연히 딱 먹어야 되는 만큼만 먹게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마음만이라도 채식주의자가 되어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좀 덜 먹기를... 그래서 미란도 같은 기업들은 모두 폭망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