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 세 번째.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다면 뒤로 가기를 누르세요》
"This is the truth. This is my story."
"이것이 진실이다. 이것이 나의 이야기다."
읽는 이들은 대부분 말하는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다.
아무 일도 아닌 듯, 아무 감정도 없는 듯 말할 수록,
그 믿음은 더 굳건해진다.그러나 화자인 셰퍼드는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너무나 교묘하게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법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나같이 투명한 사람으로선 당최 이해가 안되어도, 누군가의 세상에선 가능하다.
죄책감이란 도덕적 감각이 아니라, 들통났을 때의 리스크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이 사건은 흔한 추리 소설의 사건 아니라,
독자를 어떻게 하면 기만할 수 있는지 실험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나르시시스트 범죄자들은 자신의 책임을 수동형으로 처리하곤 한다.
"내가 죄를 저지른 게 아니야.
그냥 상황이 그렇게 나를 만들었어.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자신의 명성과 삶을 지키기 위해 감정적으로 나서야 했던 희생자인 것처럼, 자신이 만든 모든 페르소나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사람. 추악한 자기 자신이라는 진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그래서 진실을 말할 사람을 없애는 선택을 하는 자.
자신의 누나처럼 호들갑스러운 이는 진실을 직면하려 하지만, 셰퍼드는 끝내 그 감정을 소유할 수조차 없었다. 가장 가까운 혈육조차 진짜 자신의 모습을 모르니까.
실상은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결코 인정할 수가 없다.
사랑도 없고,
우정도 없고,
자기 철학도 없으며,
오직 있는 것은 자기 이미지와 타인의 신뢰,
그리고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 능력.
그리고 통제력 상실에 대한 불안.
돕는다는 명목으로 '있는 것만'을 내세우는 화자를
기다리고, 지켜보다 가만히 툭, 던지는 푸아로의 한마디.
"당신은 이야기를 참 잘합니다.
하지만… 한 줄을 더 쓰는 법은 모르시는군요."
셰퍼드는 그 텅 빈 공백 속에서 시간도, 공간도, 감정도 조작할 뿐.
'정확히 무엇을 봤는지 말하지 않고,
'애매하게 서술함'으로,
독자를 끌고 가며,
독자의 의심을 교묘하게 유도하면서.
푸아로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모든 진실을 숨긴다.
그리고 남은 건,
자신이 만들어놓은 텅 빈 자기 자신,
그리고 그 속에서 방향 없이 짓는 비틀린 미소.
자기 서사의 완결에서 모두를 속이려 했지만,
결국 진실 때문에 자기 자신의 완성되지 못한 서사에 좌절한 자.
"진실은, 아무리 추악할지라도,
그것을 찾으려는 사람에겐
언제나 흥미롭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