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새 사진 찍기

by 신솔

밤에 담배 피우는 여자, 곤히 잠든 아기, 써니사이드업과 호밀빵 한 조각, 죽은 새.

인파로 붐비는 교토역 사거리, 파티에서 처음 본 여자들, 새벽 4시 횡단보도, 다시 죽은 새.


현상한 사진들 속에 종종 죽은 새가 껴있다. 몇 년째 우연히 죽은 새의 사진을 찍고 있다. 내가 애써 죽은 새들을 찾아다닌 것인지, 아니면 그 새들이 나에게 와서 죽은 것인지 이제는 헷갈릴 정도다.


주로 집 근처에서 죽은 새를 발견한다. 이를테면 골목길에 위치한 24시간 편의점 앞이라던가, 세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흔해빠진 곳이다. 여느 때처럼 그 길을 걷는다. 나는 주변 풍경을 찬찬히 둘러보며 걷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저는 바쁜 일상을 살아내는 현대인입니다’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경보하는 타입이다. 그렇지만 문득 머리를 얻어맞은 듯이 한 곳에 시선이 고정될 때가 있다. 그러면 바로 거기에 죽은 새가 있다. 이걸 사진 찍고 있으면 사이코패스처럼 보이려나? 멈출지 말지 3초 정도 고민한다. 어디 보는 눈이 없는지 주위도 둘러본다. 그리고 길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몰래 줍는 사람처럼 재빨리 사진을 찍고, 다시 갈 길을 간다.


이 사진들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걸로 전시나 출판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SNS에도 올리지 않는다. 주로 필름카메라로 찍는데, 15,000원짜리 필름 한 롤로 36장을 찍을 수 있다. 현상비까지 합쳐서 따져보면 사진 한 장당 600원 꼴인 셈이다. 600원이나 써가면서 왜 나는 죽은 새를 찍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이끌림에 사로잡혀 사진을 찍고 만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죽은 새에게는 본능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추락, 선홍빛 피, 흰 날개, 꺾인 목, 흐드러진 깃털. 이 모든 것들이 파괴적으로 눈앞에 다가온다. 우리가 잊고 싶었던,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을 직면하게 만든다. 우리는 안다. 높게 비상하는 것은 언젠가는 추락할 거라는 것을, 모든 생명은 결국 죽는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몫이 아닌 것처럼 외면한다. 젊음과 탄생은 과도하게 예찬하고, 늙음과 죽음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단어인 듯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둔다. 이를 비웃듯이, 죽은 새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등장한다. 그리고는 너도 머지않아 맞이할 장면이니, 똑똑히 봐두라고 말없이 눈짓한다. 나는 매번 그 압도감에 굴복하고 만다.


죽은 새를 카메라로 담으며 느끼는 카타르시스도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대상을 관조해야 하는데, 그 순간 묘한 해방감이 찾아온다. 나는 지금 이 연약하고 가련한 죽음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 숭고한 희생에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것은, 어찌 되었든 나는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산 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다시 죽은 새의 사진을 살펴본다. 그 안에서 어떻게든 붙잡으려 했지만 실패해 버린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위안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나는 무언가를 잡으려 했지만 자꾸만 저 너머로 달아났다고, 하지만 지금 내 손에 이 사진만큼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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