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입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영정 사진 속 할머니는 능소화 같은 주황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슬펐던가?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무덤덤하게 앉아 밥을 퍼먹는 내 모습이 행여나 냉담하게 보이지는 않을지 걱정했던 것 같다. 할머니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치매와 중풍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 계시던 것이 벌써 몇 년 째였다. 사람들은 호상이라고 했다.
입관에 들어갈 것인지 엄마가 물어봤다.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죽은 이의 얼굴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그래도 장녀라는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가야지,라고 짧게 대답하고 나는 마저 남은 밥을 삼켰다.
입관은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몇 가지 설명들을 전달한 다음, 장의사는 할머니를 가리고 있던 흰 천을 천천히 거두었다. 조심스럽게 만져본 할머니의 머리는 푹신했다. 머리카락이 고르게 깎인 탓에 마치 눈 내린 잔디 같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숨을 내뿜었던 곳. 잠시나마 옅은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큰 이모가 할머니의 얼굴을 두 손으로 매만지다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아, 엄마 엄마아ㅡ 하며 어린아이가 되어 엉엉 울었다. 할머니를 간호했던 외숙모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금만 더 있다 가지 왜 그랬어요, 다 내 탓이야,하면서 울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나도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장의사는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와 같이 울어주고, 한 명 한 명을 포옹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잘 가신 거라고,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고. 그 광경을 보니 할머니가 죽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아주 긴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항상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다며 투덜대는 입, 한껏 웅크린 작은 등과 쪼그린 다리, 호를 그리며 움직이는 팔. 그런 것들이 고장 난 비디오처럼 남아 있다.
할머니의 눈에 나는 그저 계속해서 머리털을 내뿜으며 집을 더럽히고 음식을 축내는 아이로 보였을까? 할머니가 나에게 건넸던 말보다는 음식과 걸레질의 모양새만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의 잔소리가 꾹꾹 담긴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내심 나는 바랐다. 할머니가 나를 단 한 번이라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으면, 사랑하는 내 손녀라고 말하며 안아주기를 바랐다. TV에서 보던 할머니들의 모습은 그랬으니까.
가족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12살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그 말을 내가 먼저 꺼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그러나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머리가 더 큰 뒤에도 끝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직도 모른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못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