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돈이 아니라 나를 물려받는다

돈으론 할 수 없는 것들..

by 솔빈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사람은 세 번 정도의 큰 변화를 맞이한다고.

결혼, 자녀 출산, 부모의 죽음이 있다고 하던데.


하지만 결혼 후에도 ‘큰 변화’라는 것을 뚜렷하게 감지하지 못했다.

자녀의 출산 역시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터라 기쁨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다.

그래서 그런 말들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구나, 하고 가볍게 넘겨버렸다.


그러던 내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아들이 막 걷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순간은 마치 머리를 정통으로 맞은 듯 번쩍했다.

아이들이 다 그렇듯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며 평소 같으면 ‘아, 조심해야겠다. 별 걸 다 따라 하네.’ 하고 웃어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아이 엄마가 아이를 돌볼 때 화장실 문을 열어둔 채 잠시 볼일을 본 적이 있었나 보다.

아들이 언젠가 그 장면을 기억해 두었던 모양이다. 그러더니 자기도 볼일을 다 본 뒤 엄마처럼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번쩍 깨달았다.

아니, 이런 것까지 따라 한다고?

아이는 흉내 내는 차원을 넘어, 그야말로 모든 것을 보고 흡수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저 부족하지 않게 먹이고, 입히고, 적당한 교육을 받게 해주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들처럼 얼마라도 모아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저금이나 주식을 모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그 작은 행동 하나를 보고 알았다.

아이는 내가 하는 행동을 보며 어른이 될 것이고, 그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물론 반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후자의 경험을 해본 사람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결심만으로는 사람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들을 위해 매달 적은 월급에서 30만 원씩 떼어 모아주면 1년에 360만 원,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모아주어도 7,200만 원, 1억이 되지 않는다.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돈은 한순간에도 잃을 수 있다.

내가 20년 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것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아이가 지금의 나처럼 생각하고 생활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나보다 조금 더 잘 살거나, 나와 비슷하게 살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결혼했을 때 우리 아버지가 7,200만 원을 슬쩍 건네줬다고 해서, 정말 드라마틱하게 내 인생이 바뀌었을까?

아마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그 돈으로 가는 길은 조금 달라졌을지 몰라도, 내 생각과 판단은 여전히 그대로였을 테니까.


그때부터 나는 내 행동 하나하나에 꽂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존재라면, 결국 내가 바뀌면 된다.

내가 바뀌면 아이는 바뀐 나를 따라 할 것이다.

돈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행동과 습관, 생각하는 법은 평생 남는다.


나는 결심했다.

돈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은 ‘행동과 습관’이라고.

그때부터 나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며 스스로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내가 아는 모든 사소한 것들마저 아이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들이 방 불을 켜 달라고 부탁했다.

키가 작으니 당연히 닿지 않는 스위치라 처음엔 ‘그래, 가서 켜줘야지’ 하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응, 그래. 잠깐만, 금방 갈게.”


그런데 그 순간,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본 ‘행동 분해’라는 개념이 스쳤고,

거기에 내가 상상했던 ‘내가 8살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이 더해졌다.

두 가지가 겹치면서 전혀 새로운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나는 불을 바로 켜주지 않고 아들 앞에 쪼그려 앉아 뿅망치로 전등 스위치를 여러 번 두드려 불을 켰다.

일부러 한 번에 켜지 않고 여러 번 시도했다.

아이가 그 과정을 보고 배우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아이는 나에게 불을 켜 달라고 오지 않았다.

이제는 뿅뿅 소리만 들릴 뿐이다.

나는 이렇게 아이의 눈높이에서, 내 경험을 가르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 번은 아들과 비탈길을 걷는데, 아내가 뒤에서 말했다.

“혼자 가면 위험해. 손잡고 가자.”

맞는 말이지만 나는 조금 더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상상해 보았다.

여기서 넘어지면 어떻게 될까? 많이 다칠까?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마친 후

손을 잡고 가는 대신, 내가 앞서 걸으며 혹시 넘어지면 재빨리 잡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걸으면서 말했다.

“아빠 봐봐. 비탈길에서는 발 앞꿈치에 힘을 주거나 옆으로 걸으면 조금 더 안전하게 걸을 수 있어.”

그 자체가 아이에게는 배움이었고, 놀이였고, 경험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삶의 태도를 바꿨다.

아이는 마치 아이템을 가지고 시작하는 서브캐릭터처럼, 훨씬 빠른 속도로 레벨업을 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돈부터 벌고 나서 낳아야지” 하는 분들과,

또 아이에게 하나하나 너무 다 해주려는 부모님들께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