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도 빚이 있다.

한 사람의 시간은 두 개의 길로 동시에 흘러간다. 지금의 나, 미래의 나

by 솔빈

책을 읽다 보면 어떤 글 하나가 트리거가 되어
‘아!’ 하고 생각이 쏟아질 때가 있다.

“당신이 하고 싶지는 않아도,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행동은 불안을 이긴다』(롭 다이얼)


이 문장을 보고…

저자는 ‘규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전혀 다른 생각에 빠졌다�


� 그게 아마 책의 묘미가 아닐까??
나의 생각 흐름을 정리해 글로 녹여보았다.



한 사람의 시간은
두 개의 길로 동시에 흘러간다.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


공부를 해야 하는데 또 내일로 미뤘다.
살 빼려고 다짐했는데, 또 야식을 먹어버렸다.
SNS 잠깐만 보려 했는데 두 시간이 흘렀다.
늦잠 자지 않으려 했는데 벌써 새벽 2시다.
내일이 걱정된다...
돈을 아끼려 했는데 또 택시를 타버렸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시간을 빚진 것이다.


도무지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돈을 빌려 쓰고 빌린 사람에게
“갚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문제는,
그 기다려주는 빌려준 사람이
바로 ‘미래의 나’라는 거다.


시간을 갚지 않아도 된다.
다만 미래의 내가
조금 더 뚱뚱하거나

부족한 삶을 살면 된다.


물건을 살 때는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살 때는 불편함을 지불한다.
즉, 순간의 달콤함을 참은 만큼 시간으로 교환된다.


시간은 흘러가고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돈보다 더 가치 있다.

그걸 깨닫고 나면

우리가 익숙하게 보던 명언들도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빅터 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는 행복이 아니라 책임에 있다.”


스티븐 코비 –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먼저 하라.”


제임스 클리어 – 『아토믹 해빗』
“습관이란 매 순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투표다.”

사람의 시선에 따라
명언의 해석은 달라진다.

‘시간의 유한함’이라는 틀 안에서 보면
이 말들은 훨씬 무겁고 강렬하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어딘가에서 읽은
유대인들의 교육법이 떠올랐다.

유대인들은 정말 소름 돋도록 고차원적이다.

남자아이는 13세,

여자아이는 12세가 되면 성인식을 치른다.


아이는 12살이면 이미 작은 어른으로 대우받고,
실수를 해도 스스로 책임지며,
하루의 일과를 스스로 관리한다.

부모는 조언자로만 남는다.

그럼 아이는 자연스럽게 배운다.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인식을 통해
‘시간의 무게’를 스스로 느끼게 하는
의식적인 훈련.

이런 걸 어릴 때부터 교육한다니,
그것도 문화적으로 말이다.. �


우리 집 다솔이, 다빈이는 ��

어떻게 성인식에 버금가는 경험을 만들어줄까..

또 재미있는 고민에 빠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