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초록

힘들면 전생탓을 하자.

by Solbini



퇴사를 하고 2개월 남짓이 흘렀다.

그렇게 퇴사, 퇴사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퇴사를 하니 일할때가 그리운 건

회사에 찌들렸을 때의 정신이 덜 돌아온건가 싶기도 하고,

차곡차곡 사라져가는 통장의 잔고에 기어이 정신을 놓은 건가 싶기도 하고.


말은 이렇게 해도 진짜 후회없이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 다행이다.


울면서 일하던 때가 그립기는 해도, 그간 이뤄낸 성과를 복기하면 후회나 미련은 없으니 말이다.


2개월 중 15일은 미뤄둔 늦잠도 자고 하루종일 만화책도 읽었다.

다른 15일은 계약일 종료로 급하게 나오느라 미처 해주지 못한 인수인계의 잔재들을 처리했다.

(솔직히 간혹 지금도 전화가 오긴한다. 아직 일이 익숙하지 않은 후임들은 삐약삐약 나를 잘도 찾는다.)


나머지 한 달은 취업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토익에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다, 다른 자격증들을 몰아치듯이 이루자니

나이먹고 이게 할 짓인가 싶은 짜증이 밀려오다가

이 나이먹고 남들의 기본도 못한다 싶은 자괴감도 밀려오다가

침대에 누워 나이값도 못하고 질질짜기도 했다.


문제집 하나 사러 갔다가 빼꼼히 구경하는 소설문학에서 더 많은 돈을 쓰고 가져온

색색의 소설, 에세이는 채 읽히지 못한 채 머리맡에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걸 지금 풀고 외울 틈이 어디있나 싶다가, 돈을 못벌면 소설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고 눈을 돌렸다.


이전에는 점심을 먹어도 배가 고프더니

이젠 어제 점심도 소화를 못시키는 몸뚱이를 탓한다.

그럼에도 배는 또 고파서 질끈 묶은 머리 두피를 긁적이며 냉장고 문을 열어 젖히는 내가 한심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지독히도 안빠지는 아랫배와의 결별선언은 플랭크를 한 지 30초만에 죽을때까지 동거를 하기로 한다.


날이 갈수록 의지는 희미해지고 합리화는 늘어가는 나의 30대에

20대는 어땠을까, 하고 돌아보기라도 하는 날에는

좋았다는 마음보다 참 잘 버텼다는 감정이 생기는 걸보면


앞서 저렇게 많고 긴 문장들로 여러 불평을 쏟아냈음에도,

그럼에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들이 많았구나 하는 안쓰러움과 함께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축축하고 습한 자기연민과 우울, 방황이 한데 모인 와중에도

일어서야 한다는 강박이 점철된 나의 이전 아름다운 시절은

이따금씩 특정한 물건, 날씨, 바람의 냄새만으로도 불쑥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나는 지금이 더 좋다.


그냥 “그 땐 그랬지.”하는 흔한 말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게 되어버린

나의 이전이 그립다거나 돌아가고 싶은 마음 한 톨 없이.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했던 나날의 연속으로 인해 채워진 과거가 되어버려

조금 더 건조하고 말라 버석해진 지금이 나는 더 좋다.


이상하게 자꾸만 깜빡거리고

소화가 안되고 어딘가 아프고

기쁨이라는 단어가 사소해져도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했던 생생한 나날보다는

무던히 별 탈없이, 성숙해진 나의 지금이 좋다는 건

아마 지금 딱 30을 맞이한 96년생 이후만 느낄 수 있으려나.



그렇다고 후회되는 날이 없다는 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해볼걸, 그 땐 이런 선택을 했었다면 하는

만약의 상황에 대한 가정이 불쑥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면

어김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께 고여있던 묵직한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깊숙히 묻어둔 그리운 이의 얼굴이 잘 생각이 나질 않다가

귓가에 들리는 환청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가

지켜야 할 남은 이들의 미래에 대한 부담으로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기도 하고


앞으로 뭘해먹고 사나 하는 막막함과

박차고 나아가는 또래들을 접할때면 한없이 낮아지는 스스로를

잡을 힘도 없이 쳐다보기만 하기도 한다.


그럴땐 그냥 누굴 탓할 수도 없으니

전생을 탓해야지 뭐.


지금의 내가 더 좋지만 지금의 내가 더 불안한 날에는

그냥 탓할 사람이 없어 전생을 탓한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수십번은 팔아먹은 걸까 싶은 내 전생을 탓하면

그냥 어쩔 수 없이 털고 일어날 수 밖에.


내가 저지른 똥은 내가 치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번 생에 조금이라도 잘 살아야 혹시모를 다음 생이 좀 더 편할까 싶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탓하며 내 인생이던, 남 인생이던 저주할 바에

내 전생이나 탓하며 내가 더 열심히 사는게

30대의 버석한 내가 고른 건조기 같은 방식이다.


그렇게 뽀송하게 마른 걱정을 훌훌 털어 네모반듯이 개켜

박스에 넣어두고 다시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을 걸어갈 수밖에.



다시 비가 오고, 조금은 더 빨리 말라버릴 새로운 길에

또 젖어버릴 걱정은 또 말리면 그만인 전생에 잠시 맡겨두고

뭐.. 나는 또 사자성어나 외우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