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립은둔청년이다.

by 딥페이지

나는 우울증을 앓은 이후로, 요즘 사회에서 말하는 ‘쉬었음’ 청년 중에서도

단연 고립은둔청년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 내 위치를 이렇게 인정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내 모습을 꿈꾸지 않았는데,

점차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어가다 보니 이제는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커리큘럼 따위는 잊혀진 지 오래인 듯하다.


우선, 우울증이 발병했음을 가족에게 알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로 인해 가족들은 나를 부끄러워하고 창피해했으며, 결국 내 아픔을 감추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나 자신을 점점 더 감금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결코 아니다. 나도 남들처럼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싶었고, 우울증은 단지 내가 가진 병 중 하나일 뿐이라고 믿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고, 사회는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마치 도태시키기 위한 도구처럼 다루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의지가 약해서,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이유로 쉽게 말을 하곤 했다.

그러한 말들이 점점 더 나를 옥죄었고, 결국 포기의 길로 이끌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실패의 경험이 산적하면 자존감은 지하를 뚫고 내려간다.

그러면서 ‘아, 나는 도태된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려면,

실패해도 괜찮다는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와 패배를 단지 도태의 길로만 가르친다. 대기업, 좋은 대학, 안정적인 일자리, 좋은 집안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성공의 정답처럼 강요되는 세상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미 시작부터 나 자신을 숨기고 가두는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장하고 대견하다고 느낀다.

사람 목숨이 장난이냐고 꾸짖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짧디 짧은 30여 년의 인생에서 너무 많은 풍파를 겪으면 독해지든 무너지고 도태되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강하다고 믿었던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사람을 좋아하던 내가 이제는 사람을 싫어하고,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공황이 몰려오며, 고속버스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내게 우울증이, 그리고 PTSD가 찾아온 것은 실패의 경험이 넘쳐서가 아니라

실패 속에서 나를 구원해 줄 손길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고립은둔청년이다.



고립은둔청년 – 사회와 단절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외부와의 소통을 회피하는 청년을 일컫습니다.

고립은둔청년의 수는 지역별 통계마다 다르지만 2024년 기준, 통계청 추산 54만여 명에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