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아르바이트가 아닌, ‘진짜 취업’을 해보고 싶어졌다.
언제까지고 아르바이트로만 살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가 사는 지역에는 일자리 연계 프로그램이 있었고,
신청서를 쓰고 짧은 면접을 거쳐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꽤 진심이었다.
정말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던 나는
생각보다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 우울증은, 2교대 근무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
그 당시 나는 약을 맞춰가던 시기였고
병원에 가야 하는 날들이 종종 있었다.
일찍 퇴근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그게 점점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멀쩡해 보이는 20대가
“어디가 아파요”라고 말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리석게도 솔직해졌다.
“우울증이 있습니다.”
그 말 한 마디가 이후의 모든 걸 바꿔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레를 밀다가 오른팔 인대까지 늘어났다.
결국 나는 과장, 인사과장과 차례로 면담을 하게 되었고,
권고사직이라는 결과를 받게 됐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정말 별의별 일을 다 했다.
잡일, 청소, 그리고 사람이 부족한 자리에 땜빵처럼 들어가는 일까지.
그런 건 괜찮았다.
힘든 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참기 어려웠던 건 따로 있었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매일같이 먼저 인사를 했다. 고개를 숙이고, 또박또박.
그런데 돌아오는 건 아무 반응도 없는 공기뿐이었다.
마치 이런 느낌이었다.
“넌 곧 나갈 사람이니까.”
그 인식이 공기처럼 깔려 있었다.
며칠을 그러고 나니 나도 더 이상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내 인사를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굳이 인사를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분명히 느꼈다.
아,
내 우울증은 사회에서 ‘약점’이 되는구나.
아,
사람들은 아직도 이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아,
이 병을 ‘위험한 것’으로만 보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는구나.
그 이후로 나는 어디를 가든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는다.
입 밖에 내는 순간 나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규정하는 말이 되어버린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참 씁쓸한 일이다.
세상은 분명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
그 시선만큼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멈춰 서게 됐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질문 앞에서.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