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길

아르바이트, 그리고 교류

by 딥페이지

약을 복용하면서, 나는 조금씩 우울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당장 회사에 취직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공공일자리였다. 마침 코로나가 시작되며 일손이 부족해졌고,

운 좋게도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 맡게 된 일은 지역 방역이었다.
약품을 섞어 정해진 구역을 돌아다니며 소독을 하는, 어찌 보면 단순하고 원초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오랜만에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아주 조금씩, 정말 조금씩
‘사회성’이라는 것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도 오래가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선별진료소의 인력이 부족해졌고,
지역 방역팀에서 막내였던 나는 그곳으로 차출(?)되었다.


방역복을 입고 검사 안내를 하고,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일.
어떤 날은 오전에만 1,500명이 다녀갈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줄을 관리하고, 새치기를 막고, 반복해서 같은 설명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서로를 챙기고, 으쌰으쌰하며 버텨내는 분위기 속에서
나도 조금씩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나 그렇듯,
진상은 존재했다.
그리고 그 강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1년 반 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나는 원래 존댓말을 기본으로 하는 편이다.
특히 당황하면 생각이 멈춰버리는 경우가 있어서,
어린아이에게도 존댓말을 쓸 정도로 말을 조심하는 편이다.


어느 날, 한 중년 부부의 전자문진을 도와드리고 있었다. 여느 날과 같이 존대를 하며.
그때 남편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갑자기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버릇이 잘못 들었네.”, "왜 자꾸 반말을 해? xx야?"

그 한 마디였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생각이 꺼지는 느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일은 나에게 꽤 큰 충격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을 지나며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것.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특별하게 대하지도, 굳이 나를 공격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각자의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그저 ‘한 사람’일 뿐이었다.


때로는 더 잘해주기도 했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해주었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나를 덜 상처받게 했다.

그게 참 신기했다.


나는 늘 사람을 두려워했는데,
막상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덜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존재는 아닌 것 같다고.
살다 보니, 환경에 치이고, 감정에 닳고,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것일 뿐이라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다시 사람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게 내가 회복으로 가는 길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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