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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햇살 Feb 18. 2020

프롤로그

2017년의 어느 날

척추분리증. 척추뼈 앞과 뒤를 연결하는 협부라는 부위가 분리를 일으킨 질환.  정의 그대로 척추가 분리되어 있다고 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척추분리증으로 진단받은 사람의 50-70% 가 수술을 받게 된다고 설명하시며, 나 또한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수술을 받겠거니 하는 마음을 먹고살라고 했다. 



어차피 받을 것이라면 지금 받는 것은 추천해주시지 않나요?  



도저히 통증을 참을 수 없었던 나의 질문에 보존적 치료가 최선이며, 수술은 최후의 선택이 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비싼 돈을 내고 도수 치료와 필라테스(이 덕분에 필라테스가 체형 교정이 아닌 실제 병원에서 행해치는 치료법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를 받았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깨어 있는 매 순간 느껴지는 허리 통증, 가끔은 무의식에 빠져 꿈을 꾸고 있는 나를 깨울 정도로 통증은 항상 나와 함께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천성이 겁이 많아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지 않았던 내가 스키장에 갔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내가 가자고 한 것이 아니니 나와 함께 스키장에 가고 싶어 했던 남자친구의 잘못이었을까? 그럼 그놈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으니, 그놈을 만났던 호주에 나는 가지 말았어야 했을까? 스키장에 갔더라도 보드를 타지 않고 곤돌라나 타며 경치를 감상했어야 했던 것일까? 뒤에서 나를 박고 의무실에서 자신의 잘못이라고 사건 보고서까지 썼지만 막상 병원비 정산을 위해 연락을 했을 때 날 무시했던 그 빌어먹을 놈에게 끝까지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했을까? 그런데, 이미 내 서명이 들어간 합의서가 검찰청에 접수된 이 마당에 이런 분노 어린 생각들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상하게 혼자가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이렇게 아프고 힘이 들지만, 세상은 원망스러울정도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힘들지만 알아주는 이 하나 없다는 생각을 했고, 나의 통증에는 아량곳 하지 않고 업무와 타임라인을 드미는 회사도  야속했다. 밥을 먹어도 미숙했던 나는 나이 34이 되어서야 뒤늦게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외로웠다.  


허리와 엉덩이 부분이 아팠지만,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주변이 고요해질수록, 내 내면의 각종 이야기들이 올라왔다. 내가 이렇게 된 스키장에서의 사고부터, 지난 과거의 사소하고 유치한 서러운 기억까지 회상되어 나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혼자 있는 시간에만 그러더니, 나중에는 회사 업무 중에도 괴로운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고 놔주질 않았다.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아보았다. 그래도 나의 내면의 소리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집에 혼자 있기 괴로워서 등산을 시작했다. 상쾌한 공기 마시며 집중해야 다치지 않는 길을 걸으면 내면의 소리가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의 관악산 산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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