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끈은 질기다
집에 와 휴대품을 꺼내 놓는데 아뿔싸 장갑 한 짝이 없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어 정이 잔뜩 들었습니다. 여느 겨울처럼 올 해도 이제껏 잘 지내 왔는데, 깜쪽깉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지하철에서 주머니에 넣고 오다가 빠진 모양이었습니다. 너무 아깝고 안타까워 무작정 귀갓길을 되짚어 가보기로 했습니다. 오, 천만다행으로 길바닥에서 녀석을 찾았습니다.
그보다 더 오래된 카드지갑도 그랬습니다. 잃어버리고 되찾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언젠간 주유하고 자동차 지붕에 올려놓은 채 출발한 적도 있습니다. 갔던 길을 되돌아오면서 8차선 도로 한복판에 떨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유독 애착이 가고 잃어버렸다가도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인연이 깊다거나, 궁합이 잘 맞는다 합니다.
7년 전 죽은 동생은 아이 둘을 남겼습니다. 오누이입니다. 유난히 사이가 좋습니다. 오빠는 동생을 자상하게 잘 살피고, 동생은 그 오빠를 졸졸 따르는 껌딱지입니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오빠와 떨어지기 싫어 울며 매달리던 막내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녀석들은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제 기억에 박제되어 있습니다.
동생은 제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 홀로 인천에 왔습니다. 하던 사업이 여의치 않아 직장을 찾아 고향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때 제가 새 직장을 소개해주었습니다. 태어나 한 번도 광주 언저리를 떠나지 않았던 아이 엄마는 인천으로 이사하는 것을 주저했습니다. 그렇게 떨어진 채 시간만 흘려보내다 결국 동생은 그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후 모든 게 제 탓이 됐습니다. 그 가족의 이별과 불화, 동생의 죽음까지. 물론 제가 일부러 그랬을까요. 그럴리 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과 제수씨는 그렇게 믿고 저를 멀리하는 눈치였습니다. 한동안은 전화 연락도 잘 닿지 않았습니다. 큰 조카가 군대에 가 있는 걸 용케 알게 돼 두어 번 면회 다녀온 게 전부였습니다.
제대 후엔 다시 연락이 끊기다시피 했습니다. 재작년에 제가 광주에 가 두 녀석을 같이 본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또 만나지도 전화도 잘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4학년인 큰 조카는 교수님과 연구하는 게 바빠 한 학기 내내 밥 먹을 시간도 못 내겠다고 합니다. 아니겠지만 제 입장에선 저를 피한다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남은 제 유일한 혈육입니다. 몹시 그립습니다. 그저 잠깐 밥 한 끼라도, 그도 안 되면 꿈에서라도 만나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손주들을 몹시 그리워하십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생각이 타른 것 같습니다. 조금만 곁을 주면 좋으련만, 저는 그렇다 쳐도 할머니에게까지 그러는 이유는 잘 모르겄습니다.
하찮은 지갑이나 장갑 한 짝도 잠시 제 품을 벗어났다가 금방 그렇게 다시 돌아오곤 했습니다. 생명 없는 물건도 정이 들고 인연이 깊으면 그렇게 떨어지지 않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 할 게 없을 터입니다. 그러니 녀석들도 언젠간 우리를 받아줄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가족이고, 끊을 수 없는 인연이며, 사랑일 테니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어머니요 형제들이라 하셨습니다(루카 8.21 참조). 조카들도 제수씨도 다 같은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입니다. 그네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대로 하느님을 믿고 섬긴다면 언제든 그럴 날이 있을 것입니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저를 다시 가족으로 받아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했습니다. 녀석들은 아직 어린데 저는 별 해명도 없이 그저 무턱대고 다가가기만 하려 했습니다. 녀석들은 얼마나 또 부담스러웠을까요. 이제부터라도 더 참고 기다리겠습니다. 더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요한1 4.7 참조). 우린 절대 떨어질 수 없는 하느님의 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