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나의 브랜드

나는 그분의 것입니다

by 이앙꼬

선명한 왕(王)자 복근은 모든 남성의 로망입니다. 액션 스타 이소룡 이후 세상 모든 남성들은 윗몸 일키기에 매달렸습니다. 세 개의 가로 선과 그 가운데를 가르는 한줄기 세로 선의 형상은 웬만한 수련으론 어림도 없습니다. 피나는 노력과 그 이상의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합니다. 성공확률은 1%도 안 됩니다.


저도 그 99%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고 술을 마시고, 먹고 싶은 것 다 챙겨 먹으니 될 리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이 들수록 몸은 흉측하게 망가져만 갔습니다. 그냥 다 포기하고 말았는데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딱 그 자리에 그 자태도 선명한 임금 ’왕‘자가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건 근육이 아니라 그저 흉터입니다. 작년 요맘때 수술했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생살을 째고 암 부위를 제거한 후 다시 덮어 꿰맨 흔적이 그렇게 남았습니다. 상흔은 거기 말고도 몇 군데 더 있습니다. 목덜미와 등, 오른쪽 배 등입니다. 수술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수술한 직후엔 그 자국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와 달리 마음이 여려(?) 그런 걸 잘 못 봅니다. 애써 눈길을 피하기만 하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야 자세히 살폈는데, 정확히 그랬습니다. 근육 글자보다 크기가 작고 획이 얇기는 했어도 임금 왕 자가 틀림 없었습니다. 평생을 간직만 해 온 꿈이 이렇게 이루어지나 싶어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브랜드(Brand)는 경쟁사(社)나 그들의 제품과 구별하기 위해 붙이는 고유한 표식입니다. 그 역사는 무척 오래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동굴에 그린 벽화나 기르는 가축의 엉덩이에 찍는 불도장도 다 그 일종입니다. 요즘에는 단순히 회사나 제품의 이름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상징(Symbol), 로고(Logo), 구호((Catchphrase) 등까지 그것의 범주에 포함 시킵니다.


애플사의 한 입 베어먹은 사과나 나이키의 ’Just Do It’, 삼성전자의 바다와 하늘을 의미하는 푸른 타원 등은 우리가 익히 아는 글로벌 브랜드들입니다. 현대기업들은 그렇게 그 안에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 철학, 비전 등을 담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꿈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문득 제 배에 새겨진 선명한 ’왕‘ 자도 그것의 일종이 아닐까, 그러니까 ’왕 표, 이상구‘라는 뜻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건 제가 새겨 넣은 게 아닙니다. 제 몸이지만 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여지껏은 제 것이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수술한 다음부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주인은 누구란 걸까요.


우선은 수술을 집도한 의사 선생님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수술로 병을 낫게 했다고 저를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수술환자는 저 말고도 많은데 그리 됐다는 얘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수술 후에도 여전히 환자와 의사의 관계일 뿐입니다. 생각은 그분에게로 향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천상의 그분, 우리의 모든 것을 관장하시는 그분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의문을 풀지 않는 제자 토마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17).” 예수님 몸의 상처, 당신의 최후에 새겨진 세상의 흔적이자 죽음의 증거입니다. 어리석은 제자는 그제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을 부르짖습니다.


설마 아니겠지요. 하잘것없는 저에게 그런 걸 주실 리가. 하지만 저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렇게 믿으렵니다. 영원히 내 몸에 남을 그 거룩한 흔적을 보며 믿음을 되새기겠습니다. 다시 나태해지려 할 때마다 그것을 어루만지며 각오를 새로이 하겠습니다. 다시 살게 하신 징표입니다. 자랑스러운 저의 브랜드입니다. 그 주인은 우리의 임금, 한 분이신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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