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같은 늑구

그 이름의 의미

by 이앙꼬

늑구가 사라졌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늑대입니다. 그래서 늑구입니다. 그 이름으로 미루어 수컷이 분명합니다. 울타리 밑을 파고 나가 홀연히 사라졌답니다. 자연을 호령하던 맹수의 DNA가 있는지라 동물원 우리는 턱없이 좁았을 터, 자유를 위한 용감한 탈출입니다. 근데 동물원 밖은 정글보다 험한 대도시입니다. 녀석의 앞길이 걱정됐습니다.


늑구처럼 동물원을 뛰쳐나가 소동을 빚은 동물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유독 그 녀석에게 관심을 두는 건 그 이름 때문입니다. 저랑 비슷해서 그렇습니다. 같은 구자 돌림입니다. 늑구는 아홉 구(九) 자를 썼답니다. 저는 구할 구(求)입니다. 녀석은 ‘늑’자 돌림이고 저는 ‘상’자 돌림입니다. 다 다르긴 합니다만 이상하리만치 강한 친밀감이 느껴졌습니다. .


사실 이름 끝에 ‘구’ 자가 들어가면 어딘가 모자라고 촌스럽게 들립니다. 그 역사는 70년대의 인기 TV 드라마 ‘여로’까지 올라갑니다. 주인공은 정말 순수하고 착하지만 지능이 조금 모자란 ‘영구’입니다. 80년대 개그맨 심형래가 그 이름을 이어받았고 그 이후 ‘맹구’가 나왔습니다. 2000년대에 등장한 ‘빙구’까지, ‘구’자 돌림은 바보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제 이름 상구는 조금 더 특별합니다. 소설이나 영화 따위에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하나같이 악역이거나 모지리역입니다. 소설 ‘태백산맥’의 왈패 출신 경찰 앞잡이는 염상구, 영화 ‘명량’에서 탈영했다 잡혀 참수당한 병사는 오상구입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는 비열한 내부고발자 ‘안상구’가 등장합니다. 그밖에도 수두룩합니다. 제 이름은 별로였습니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요한 1.42).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간 이는 그의 동생 안드레아입니다. 예수님이 새로 주신 아랍어 이름 케파는 유다어로 ‘베드로’고 우리말로는 ‘반석’, 반듯하고 단단한 바위라는 뜻입니다.


원래 시몬은 유혹에 약하고, 감정에 휘둘리며 성질 급하고 나대기 좋아하는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서 범상치 않은 미래를 보셨습니다. 어울리지 않게 그에게 교회를 세우라는 지상과제를 주시면서 그 반석이 되라는 의미의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과연 그 이름처럼 지난한 과정을 거쳐 최초의 교회를 세우고 초대 교황에 오릅니다.


베드로처럼 이름이 그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나 생각해봤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름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그저 평범한 어부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그가 주신 이름을 기꺼이 받았습니다. 그 이름에 합당할 수 있도록 스스로 매진하고 자신을 단련시켜 마침내 그 이름값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도 한때 이름을 바꿔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끝내 그러진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이름을 지어주셨을 땐 나름의 뜻과 의미가 있을 터였기 때문입니다. 따져 보면 제 이름의 ‘구’ 자는 의미가 특별합니다. 사람에게 쓰면 그를 구호, 구원한다는 의미고, 사물이 뒤에 오면 그것을 찾는다는 뜻이 됩니다. 이모저모가 참 좋은 의미입니다.


6년 전 안드레아 코르시니라는 새 이름까지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이름입니다. 17세기 플로렌스 지방의 추기경이셨던 성인이십니다. 신기한 노릇은 그 역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시고 전쟁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제 이름의 ‘구’ 자와 일맥상통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제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아, 그러는 사이 늑구가 돌아왔답니다. 자유를 향한 탈주극은 9일 만에 마취총 한방으로 끝이 났습니다. 뱃속에서 낚싯바늘이 발견됐지만 대체로 건강한 상태라고 합니다. 녀석이 대견하고 그를 구해준 분들이 고마웠습니다. 동물원이 대전에 있다니 이번 선거가 끝나면 한번 보러 가야겠습니다. 괜스레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자유를 사랑하는 형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