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우리 회사 점퍼
오랜만에 후배를 만났습니다. 찻집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후배가 말합니다. “형, 점퍼가 참 멋지네요.” 눈썰미가 있습니다. 그건 제가 가진 거의 유일한 ‘(유명)브랜드 제품’입니다. ”어, 이거 우리 회사 유니폼. 우린 적어도 이 정도는 입지.“ 저는 한껏 거들먹거립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제가 10년 만에 입사한 회사의 단체 근무복입니다.
카키색 항공점퍼 스타일입니다. 소매와 아래 끝단을 밴드로 처리해 깔끔하고 날렵해 보입니다. 입은 듯 아닌 듯 가볍숩니다. 하나도 안 두꺼운데도 참 따뜻합니다. 암만 영하로 떨어져도 그거 하나만 입고 있으면 끄떡없습니다. 바람이 조금 스산해진다 싶으면 꺼내 입고 겨울 내내 그거 하나로 지냅니다. 비싼 건 그렇게 다 제값을 합니다.
그게 너무 좋아 그랬습니다. 옷 자체보다는 그것이 품은 의미와 상징이 마음에 듭니다. 더 이상 암담하고 불안한 실직자가 아니라 제게도 일이 있고, 무엇보다 제가 다시 이 사회의 당당한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음을 상징합니다. 그보다 자랑스러운 게 또 뭘까요. 오죽했으면 그걸 받자마자 제 돈 주고 우리 회사 이름을 가슴팍에
새겨 넣기까지 했을까요.
우리 직원 중에도 그렇게 한 건 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오른쪽엔 옷 회사 이름이 왼쪽엔 우리 회사 이름이 박힌 제 점퍼는 그래서 세상에서 유일무이합니다.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냐, 하시는 분도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만큼 제 빛나는 역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점퍼는 제 근무복이자, 외출복이고 등산복이고 운동복입니다. 그걸 입어야 저는 빛이 납니다
10여 년 전 예기치 않게 실직한 후 많이 힘들었습니다. 40대 후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특별한 기술도 없다 보니 재취업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오라는 곳도 없었고, 이력서를 내도 면접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데 앞은 보이지 않고 당장 할 것도 없었습니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마음만 조급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럴수록 더 부지런히 다니면서 뭐라도 해야 했는데 술에 빠져 지낼 때가 많았습니다.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심신은 형편없이 망가져 갔습니다. 어느 날 문득 화장실 거울로 흉측하게 변한 제 모습을 보곤 기겁하며 놀랐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계속 이러다간 뭔가 사달이라도 날 것 같았습니다.
궁여지책, 택시기사로 취업했습니다. 하루 15~16시간쯤 일하면 한 달에 300만 원 정도 법니다. 일은 고됐지만 마음은 편했습니다. 일을 하니 그랬고, 일한 만큼 버니 또 그랬습니다. 그때 다양한 손님들을 실어 나르면서 만난 분들 중 회사 유니폼 입고 출퇴근하는 분들이 제일 부러웠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만만한 표정에 시종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과 활동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합니다. 모두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은사입니다. 그것은 모두의 ‘공동선’을 위한 각자의 역할과 기능입니다. 우리의 이웃과 세상 전체를 위한 각자의 ‘일’인 동시에 ‘의무’입니다, 그 모두가 성령의 은사입니다(코린 1. 12.1~11 참조).
우린 각자에게 주어진 그 과제를 성실히 이행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서 세상이 유지되고 아귀가 맞게 돌아갑니다. 제가 실직하고 방황할 때 들었던 조급증은 기실 그런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무력감과 죄책감 따위가 뒤섞인 감정이었을 터입니다. 물론 돈도 필요했지만 그보다는 저의 존재감 그보다 저 근본적으로 저의 쓸모가 남아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지금 입고 있는 이 점퍼가 그걸 상징합니다. 벗고 싶지 않은 마음은 당연하지 않나요. 마음 같아선 사시사철, 1년 365일 이것만 입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런데 어느덧 봄입니다. 나는 괜찮은데 주위분들이 저를 답답하게 쳐다보십니다. 아쉽지만 저분들을 위해 잠시 벗어야 합니다. 깨끗이 빨아 옷장 안에 고이 넣어두어야겠습니다. 다시 찬 바람이 불 계절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