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먹는 시간

혼자인 것이 더 즐거운 이유

by 이앙꼬


가끔 도시락을 싸서 출근합니다. 점심 식사 약속이 없을 때 주로 그렇습니다. 냉장고에 음식이 많이 남았고 또 그것들이 상하기 직전이라면 일부러 약속 잡지 않고 바리바리 챙겨 나갑니다. 소분해 얼려둔 밥 한 덩이에 먹던 반찬 두어 가지를 비닐봉투에 담아가는 수준입니다. 이것저것 반찬을 새로 만들고 이쁘게 꾸미는 따윈 전혀 아닙니다.


사무실이나 근처 도서관 등에서 먹습니다. 꽁꽁 언 찬밥이어서 전자레인지가 꼭 있어야 합니다. 요즘처럼 날이 좋으면 잘 덥혀서 소풍 가듯 야외로 들고 나가기도 합니다. 우리 인천엔 주위 어디든 도시락 먹을 만한 공원이 많습니다. 밖에 나간 날엔 음악도 곁들입니다. 꽃잎이 난분분 흩날리고 아름다운 선율까지 함께 하면 그보다 더 멋진 만찬이 없습니다.


사실 제 도시락 역사는 제법 깁니다. 2011년, 회사 경영진이 바뀌었다고 제가 소위 ’적폐‘로 몰렸을 때부터였습니다. 새로 부임한 그들은 무조건 회사를 나가라 했습니다. 잘 버텼지만 무척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살갑게 지내던 동료들이 숨기지 않는 싸늘한 눈빛이었습니다. 정말 친하게 지냈던 몇만 은밀히 눈인사를 나눌 뿐, 대부분은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습니다.


당연하게도 밥 먹으러 가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굶을 수는 없는 법,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낸 게 도시락이었습니다. 그때도 근처 공원에서 혼자 먹었습니다. 날이 나쁘면 지하주차장에서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좋았습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히 먹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 그랬습니다.


고통스럽고 불편하기만 한 오전 시간을 버티다 보면 진이 다 빠집니다. 그러다 맞는 60분의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오아시스와 같았습니다. 거기서 도시락 밥을 꼭꼭 씹어 먹으며 남은 오후를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곤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 사이를 떠나도, 그렇게 혼자인 것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구나, 오히려 그게 더 소중할 수 있구나, 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제 나이 40대 후반, 한창때였지만 저는 조금 이르게 ’정리‘하는 법을 배운 건지 모릅니다. 분별없이 늘어놨던 관계와 인연의 가지를 쳐내고, 엉망으로 흐트러진 시간들을 차곡차곡 쟁였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돌아보며 타인에 대한 기대나 믿음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뼈저리게 알게도 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답답하셨습니다. 아버지 주님의 뜻을 실제 그들 앞에 펼쳐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도통 믿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보내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요한 6.37).” 여하한 경우라도 사람을 가리지는 않으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또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않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다면서도 자신의 재산을 포기하지 못한 부자 청년이 슬퍼하며 떠날 때 그러셨습니다(마태 19.16~22 등 참조). 심지어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군지 아시면서도 고발하러 가는 그를 잡지도 말리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다른 모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6)?”하고 물으셨을 뿐입니다.


그 무렵 저는 매우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혼자 그 도시락을 먹었던 것은 그저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저는 제 인생과 주변을 성찰했으며 앞으로의 길을 찾았습니다. 그땐 종교에 들기 전인데도 제게 등을 보인 이들을 미워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내가 그러는 것처럼 그들은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옳습니다. 오는 사람 막을 필요 없고 가는 사람을 잡을 이유도 없습니다. 거른다고 좋은 사람만 내게 오는 건 아니며 잡는다고 그가 마음까지 바꾸지는 않으니 그렇습니다. 홀로 남는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시련 후 제가 만난 그분은 제게 속삭이십니다. 그게 뭐든 두려워 말라고, 세상 끝날 때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제게 늘 힘을 주사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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