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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재 Mar 24. 2017

“노동시간 단축은 승진과 같은 기쁨을 준다”

자유 시간의 확대가 인간 해방의 길이다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하나의 선결 조건이다. 그 조건 없이는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와 노동자 해방은 실패할 것이다. …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여가 시간은 모든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노동 계급의 건강과 힘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그들의 지적 능력을 개발하고 사회적 상호 작용을 하고 사회적 활동과 정치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데도 필요하다.”(칼 마르크스)

인간의 해방을 자유 시간의 확대로부터 정의한 마르크스의 말처럼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의 삶의 질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시간 단축으로 소득이 줄거나 노동 강도가 세지면 노동자 복지에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노동자 개인의 복지가 어떻게 변할지는 이런 양 방향의 힘을 함께 살펴야 알 수 있다. 

아쉽게도 노동시간 단축을 실업에 대한 대응책으로 접근한 연구는 상당히 많은 반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자 복지의 변화를 다룬 연구는 드물다. 최근 파리경제대학에서 이런 여백을 채워줄 논문 한 편이 나왔다. 파리경제대학의 박사과정 학생인 앤서니 레핀퇴르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자 복지 :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사례’이다. 레핀퇴르는 유럽공동체의 가계 패널 자료를 이용해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주당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평가했다. 그 결과 저자는 “프랑스의 경우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직장 내 만족도 상승은 승진을 했을 경우와 같은 수준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포르투갈의 경우도 비슷한 정도의 만족도 상승을 보였다고 말했다.  

레핀퇴르는 앞선 연구를 검토한 결과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 복지에 어느 만큼 영향을 줄지는 사전적으로 분명치 않다고 밝혔다. 일례로 그가 검토한 선행 연구 중에 한국의 주 5일제 시행에 따른 노동시간 단축 사례를 연구한 2014년 논문(하머메시, 가와구치, 이정민)은 노동시간 단축이 삶의 만족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한국의 같은 사례를 연구한 로버트 루돌프 고려대 교수는 2014년 논문에서 노동 강도의 증가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주관적 복지’를 상쇄한다고 주장했다.

고건 국무총리(오른쪽)가 2003년 9월1일 오전 정부 종합청사 브리핑실에서 관계 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주5일제 시행에 관한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레핀퇴르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자의 주관적 복지 변화를 살피기 위해 프랑스와 포르투갈 사례에 주목했다. 1990대 초반 포르투갈은 유럽 국가들 중 상대적으로 노동시간이 길었다. 유럽연합 평균 수준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포르투갈 정부는 1996년 10월 주당 노동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기로 결정하고 1996년 12월1일부터 주당 40~42시간 노동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새 법정 노동시간을 적용받도록 했다. 그리고 42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2시간을 단축하도록 했다. 1997년 12월1일부터는 주당 40시간 노동이 전 사업장에 적용됐다. 이 기간 동안 월급은 기존 수준을 유지해 시간당 임금은 올라가게 했다. 

1983~2014년 사이 유럽 주요국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의 변화 추이. 출처:‘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자 복지’

프랑스의 경우 사회당, 녹색당, 공산당 등 좌파 연립 정부는 1990년대 말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두 가지 법안을 발표했다. 하나는 법안 제안자인 당시 고용연대부 장관 마르틴 오브리의 이름을 딴 ‘오브리 법 1’이다. 1998년 6월13일 공포된 오브리 법 1은 2000년부터 노동자 수가 20인 이상인 기업의 주당 노동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을 낮추고, 2002년부터 이를 20인 미만 소규모 회사에까지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금융지원책도 마련됐다. 프랑스 정부는 2000년 1월19일 ‘오브리 법 2’로 주당 35시간 노동을 재차 확인하고 근무시간과 초과근무 등의 정의를 더욱 정확히 가다듬었다. 이와 관련된 노동법 조항도 수정했다. 초과근무에 따른 프리미엄은 첫 8시간 동안은 25%, 그 이상이 되면 50%로 기존대로 유지했다. 프랑스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에도 명목 임금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다. 

레핀퇴르는 포르투갈과 프랑스 각각에서 실험군과 대조군을 나눠 노동시간 감축에 따른 개별 노동자의 후생 증가를 측정했다. 포르투갈의 경우 실험군은 1996년 10월 이전 주당 42시간 일한 노동자들이다. 대조군은 1996년 10월 이전 주당 노동시간이 35~40시간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했다. 비교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주당 35시간 미만 혹은 50시간 이상인 노동자들은 제외했다. 프랑스의 경우 실험군은 2000년 1월 이전 주당 35시간 이상 일했던 고용규모 2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대조군은 2000~2001년 사이 노동시간 단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2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실험군과 대조군 모두 시간제 노동자, 자영업자, 수습생들을 제외하고 18~60세 이상 정규직 노동자들만을 대상으로 했다. 

1997년을 기준으로 포르투갈의 실험군의 경우 주당 노동시간이 1.7시간이 줄었다. 출처: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자 복지’

표 2와 3은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주당 노동 시간 변화를 보여준다. 포르투갈의 경우 44시간에 육박하던 실험군의 주간 노동 시간이 전 사업장에 주당 40시간 노동이 적용된 1997년 이후 42시간으로 줄었음을 알 수 있다. 대조군의 경우 40시간 언저리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프랑스의 경우 실험군과 대조군 모두 2000년 이전 노동시간이 줄었지만 실험군의 노동시간 감축의 폭이 더 컸다. 노동시간 단축 입법으로 줄어든 노동시간은 포르투갈이 주당 1.7시간, 프랑스는 1.1시간이었다. 실험군과 대조군 모두 이 기간 동안 임금 변화는 없었다. 

2000넌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실험군의 주당 노동시간은 1.1시간이 줄었다.

저자는 소득과 재정 상황, 직장과 가정생활, 사회적 관계, 건강 등에 관련한 질의문이 포함된 유럽공동체의 가계 패널 조사 자료를 이용했다. 연구의 초점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일과 여가에서의 만족도 변화였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다음의 문항을 이용했다. “다음의 영역에서 현재 여러분의 상황에 얼마나 만족하십니까? ① 당신의 일 혹은 주된 활동 ② 당신이 누리는 여가 시간의 양”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만족하지 않음을 뜻하는 1에서 전적으로 만족함을 뜻하는 6까지 6개 항을 선택할 수 있다. 일과 여가 만족도를 동시에 조사한 것은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시간-소득의 관계만이 아니라 노동 조건과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비시장적 시간 이용(휴식과 자원봉사와 취미활동 등 사회적 경제 활동 참여)에 관한 결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프랑스와 포르투갈에서의 주관적 후생 증가에 영향을 미친 변수가 적어도 두 가지 있다고 밝혔다. 하나는 양국이 노동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임금을 유지해 시간당 임금이 상승한 것이고, 또 하나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 조건에서의 만족도 상승이다. 저자는 여기서 시간당 임금 상승보다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조건의 만족도 상승이 더 큰 요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임금 만족도는 시간당 임금이 아니라 월급의 형태로 받는 임금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는 한국 사례를 연구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만족도 상승이 노동 강도 상승으로 상쇄됐다는 루돌프 교수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동시간 단축은 한편으로 노동 강도를 높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론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는 혁신으로 이어져 노동 조건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연구 결과 프랑스의 경우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만족도 상승은 직장 내에서의 승진과 맞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한 결과 프랑스 노동자들은 직장 내 만족도(아래 그래프에서 파란 실선)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지 않았을 경우의 만족도(파란 점선)와 비교해 평균 0.1의 상승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승진으로 인한 만족도 향상과 맞먹는 수준이다. 여가와 관련한 만족도의 경우(붉은 실선)도 비슷한 정도의 만족도 상승을 보였다. 

프랑스의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자 개인의 만족도 변화. 그래픽 출처:파리경제대학
포르투갈의 경우 노동시간이 단축된 실험군의 직장 만족도가 노동시간 단축의 영향을 받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포르투갈의 경우 노동시간이 단축된 실험군의 여가 만족도가 노동시간 단축의 영향을 받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상승했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일과 여가에서의 만족도 상승은 포르투갈도 비슷한 정도로 나타났지만 양국 모두에서 이런 효과가 전 노동자들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난 것은 아니다. 국가별로 성별과 종사하는 업종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이 미치는 영향이 달랐다. 저자는 “노동시간과 노동조건에서의 만족도가 임금 만족도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만족도 증가 효과는 포르투갈에서는 여성과 가족들 간의 유대 관계가 강한 사람들에서 더 크게 나타났고 프랑스의 경우 남성과 제조업과 농업 노동자들에게서 더 크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국가별로, 성별과 종사하는 업종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이 달랐다. 출처:‘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자 복지’

저자는 자신의 연구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모든 비용과 이득을 포함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노동시간 단축은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 증가로 상쇄되지 않는 한 단위임금비용 상승을 가져온다. 프랑스에서는 기업들의 노동시간 단축을 고무하기 위해 세금을 감면했는데 그 액수가 2002년 160억유로에서 2010년 220억유로로 증가했다. 반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개인의 만족도 상승을 금액으로 계산할 경우 어느 정도나 이를 상쇄할지는 뚜렷하지 않다. 저자는 또한 “일에 대한 만족도를 상당한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조건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는 불충분하며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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