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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재 Apr 21. 2017

체첸의 동성애자들은 오늘도 죽음의 위협 앞에 놓여있다

체첸이 지옥이라면 한국은 연옥?

처음엔 두 명의 텔레비전 방송사 기자가 사라졌다. 그 후 웨이터 한 명이 실종됐다. 3월 말 이후 일주일 사이 체첸의 거리에서 16세~50세 사이의 남성 100여 명이 사라졌다.

지난 1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는 체첸의 러시아 지역에서 100여 명의 동성애 남성이 체포되고, 이중 최소 3명이 살해당했다고 보도했다. 가제타는 체첸 당국이 “전통적이지 않은 성적 지향 또는 그러하다는 단순한 의심”에 따라 이들 동성애자 남성들을 체포·고문했다고 전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신원이 확인된 3명 외에도 다수가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는 ‘명예 살인’으로 희생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가제타의 보도에 따르면 구금된 동성애자들 중에는 람잔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인물들도 포함됐다.

노바야 가제타는 5일 후속 보도로 체첸이 체포한 동성애자들을 수도 그로즈니 인근 아르군의 비밀 수용소에 가둬놓고 있다고 전했다. 체포된 동성애자들은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수사관들은 쇠로 된 죔쇠를 손가락, 발가락에 끼운 뒤 전기를 흘려 고문했다. 고문이 끝나면 욕설과 함께 나무나 쇠몽둥이로 구타를 당했다. 이런 고통 끝에는 알고 있는 동성애자들의 이름을 대라는 요구가 뒤따랐다. 운이 좋을 경우 큰 액수의 몸값을 치른 뒤에 풀려날 수 있었다.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급하게 아파트와 부동산을 팔아 몸값을 댔다. 또 다른 일부는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비난을 들으며 친족들에게 손이 묶인 채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 인근의 아르군에 있는 비밀 수용소의 모습. 2000년대 군 사령부 건물로 사용되던 곳이다. 출처:노바야 가제타


■‘게이 프라이드’ 허가 요청에 ‘예방적 청소’ 지시

동성애자 박해는 3월 초 러시아의 성소수자 인권 운동단체인 ‘GayRussia.ru’에 속한 활동가들이 체첸 일부를 포함한 북 코카서스 지방의 도시 네 곳에서 ‘게이 프라이드’(동성애자의 자긍심) 행사를 허가해달라고 요청한 이후 시작됐다. 이 신문은 “‘예방적 청소’에 착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은 바로 이때”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의 1일 보도에 따르면 이들 활동가들은 러시아 지방 도시 90곳에 게이 프라이드 행사 허가를 요청했다. 실제 허가를 기대하면서 한 행동은 아니고 거부 사례를 모아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벌인 활동이었다. 동성애에 부정적인 여론이 큰 러시아에서 게이 프라이드 행사를 벌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동성애자 인권 탄압을 입증하기 위해 이런 우회 방식을 택한 것이다.

람잔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의 대변인 알비 카리모프는 즉각 이 보도가 “전적으로 거짓말이며 잘못된 정보”라고 말했다. 알비 카리모프는 인테르팍스 통신에 “우리 공화국 안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탄압할 수는 없다. 동성애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덧붙여 “만약 그런 사람들이 체첸에 존재하더라도 법 집행 당국은 그들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라며 “그들 자신의 가족들이 이들을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동성애자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존재하더라도 생명권을 부인한다는 입장이다.

인권단체들은 체첸 당국의 부인을 일축하며 행동에 나섰다. 국제인권감시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노바야 가제타가 공개한 정보들은 최근 휴먼라이츠워치가 신빙성 있는 많은 정보원들로부터 받은 정보와 일치한다”라며 “정보의 수와 사례들의 일관성은 이 사건들이 실제 일어났다는 주장에 어떤 의심도 주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긴급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며 동성애자 납치와 살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이 온라인 서명에서 “체첸 정부는 경찰에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미리 쓸어버릴 것’을 지시했다는 것은 고사하고 게이 남성이 체첸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GayRussia.ru’는 지난달 말부터 동성애자들이 위험을 느끼거나 위협당할 경우 연락할 수 있는 ‘핫 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크렘린궁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공보비서는 3일 발표한 성명에서 “크렘린은 이 상황을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법 집행 당국이 언론 보도를 들여다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법 집행 당국의 권한 남용에 의한 피해를 입은 개인은 공식적으로 관계 당국에 소송을 걸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의 조사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지만 피해자 보호 조치가 없어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단체나 언론에 익명으로 제보하는 것도 두려운 마당에 지역 보안 당국에 공식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보복을 불러올 것이 뻔한 극도로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7일 성명에서 “성적 취향이나 다른 어떤 이유로도 개인을 박해하는 것을 비난한다”며 “체첸 당국이 공개적으로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을 부추기는 성명을 낸 것에 깊이 우려한다”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러시아 연방 당국이 이런 조치들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불법적으로 억류된 사람들의 석방과 사건에 대한 독립적이고 신뢰할만한 조사를 수행하고 책임자들을 적발해 처벌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유럽의회 의장 안토니오 타자니는 “이런 일을 저지른 이들을 기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이번 동성애자 박해 사건의 책임자들로 마곰드 다우도프 체첸 의회 의장과 애우브 카타에프 아르군 경찰청장을 들었다.

마곰드 다우도프 체첸 의회 의장(왼쪽)과 애우브 카타에프 아르군 경찰청장(오른쪽)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노바야 가제타


■카디로프 독재와 무관치 않아

러시아에서 동성애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2012년 제정된 법에서 “비전통적 성관계를 청소년을 상대로 홍보하는 행위”를 금지할 뿐이다. 그러나 사법부나 경찰이 동성애자들 다루는 방식은 굉장히 억압적이라 많은 동성애자들이 러시아를 떠나게 만들었다. 체첸의 경우 러시아보다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더 극심하다. 이는 체첸이 연방 속에서 차지하는 ‘자율성’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 연방의 일부인 체첸은 ‘국가 안의 국가’로 러시아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카디로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충직한 사도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러시아 연방에 충성하는 대가로 카디로프는 러시아로부터 강제권과 폭력 행사에 있어 완전한 백지위임을 받았고 테러와의 전쟁과 경제 재건이라는 명분 하에 이를 행사하고 있다.

람잔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 출처:위키피디아

무자비한 보복은 비대해진 무력 조직과 군사화된 사회에서 체제가 무엇을 허용하고 허용하지 않는 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방법이다. 체첸에서는 2016년 이후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한 고문과 구타, 국가 폭력이 극심해지고 있다. 북 코카서스 지역 전문가인 오드 메를랑 브뤼셀 자유대학 정치생활연구소 연구원은 이런 추세가 체첸 사회의 보수화 흐름과 관련 있다고 봤다. 메를랑은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일부다처제 허용, 여성 복장에 대한 규제, 강제 결혼과 가정 폭력에 대한 용인이 이슬람 공식 권력에 의한 ‘재전통화’라는 흐름 속에 정당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체첸 사회는 관습법에 따르는 사회로 동성애 문제에 있어 매우 보수적이다. 권력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친족들의 ‘명예 범죄’를 눈 감아 주고 있다. 게다가 카디로프는 평소 동성 결혼을 허용한 서방이 도덕적으로 완전히 퇴폐했다고 비난한 사람이다. 메를랑은 이런 점을 감안하면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적 조치도 놀랄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체첸의 동성애자 박해가 알려진 것은 당국의 보복과 가족들에 의한 ‘명예 범죄’의 공포를 이겨내고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을 용감하게 제보했던 이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노바야 가제타는 이번 사건이 동성애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체첸 사회의 침묵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바야 가제타의 시각은 이렇다.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들은 다른 모든 인권 운동가들과 다르다. 인권 운동을 멈추고 정치적 견해를 바꾸고 신앙을 바꿀 순 있지만 피부색을 바꾸거나 성적 지향을 바꿀 순 없다. 미국에서 성소수자와 흑인들이 인권 운동의 동력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체젠에서 박해를 받았던 동성애자들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


■체첸이 지옥이라면 한국은 연옥?

국가 권력에 의한 동성애자 탄압이 체첸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국가 권력은 노골적으로 반 동성애 폭력을 조장하거나 혹은 자경단의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암묵적으로 이를 지지하기도 한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정치인과 정부 관리들은 성소수자 혐오 감정을 부추겨 경찰 병력이 평화적인 성소수자 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동성애자들을 검거하도록 했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들을 목표로 한 폭력 조직의 공격도 조장했다. 지난해 4월 방글라데시에서는 2명의 동성애 인권 활동가들이 잔인하게 흉기로 살해당했다. 당시 정부 최고위 관리는 공개적으로 이들 희생자들이 “우리 사회에 맞지 않는 가치”를 퍼트리는 일에 종사했다고 밝혔다. 감비아 정부는 언론인과 인권 옹호가, 학생운동 지도자, 종교 지도자, 반 정부 인사에 대한 탄압을 성소수자 단체로 확대했다. “동성애는 신에 반하며, 인간에 반하며, 문명에 반한다”는 전직 대통령의 발언이 이를 추동했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1월 말 러시아의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인 올렉 바실리예프가 실종됐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도네츠크 공화국에서 인권 옹호 활동을 하기 위해 이 나라를 찾았다가 국경 통과 후 연락이 두절됐다.

한국에서도 국가 권력이 동성애자를 탄압하고 있다는 의혹이 나왔다. 군인권센터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92조의6 추행죄로 형사처벌하라’고 지시했다는 제보를 피해자 10여 명으로부터 받았다”라고 밝혔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장 총장의 지시에 따라 육군 중앙수사단 사이버수사팀은 지난 2월부터 한 달간 전 예하부대를 대상으로 수사를 벌여 동성애자 군인 40~50명의 신원을 확보했다. 이후 수사팀은 동성애자 군인들에게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주변에 알려질 수 있다”라고 협박하는 등 강압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권센터는 다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 수사팀이 ‘게이 데이팅 어플’을 이용해 ‘함정 수사’를 벌인 뒤 이를 통해 얻은 정보로 동성애자 군인을 협박해 다른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하는 등 불법 수사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이 센터는 장 총장과 육군 중앙수사단 사이버수사팀 수사관 4명을 헌법상 평등권, 인격권,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 양심의 자유 침해와 적법절차 준수의 원리 위반, 영장주의 위반을 사유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

동성애자를 단속하기 위해 알고 있는 동성애자들의 이름을 대라고 강요하는 것은 한국도 체첸과 다름없다. 전기 고문과 구타만 하지 않을 뿐이다. 주요 정치인들이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것도 다를 바 없다. 노컷뉴스의 20일 보도에 따르면 이날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기공협)가 서울 여의도에서 연 ‘제19대 대통령선거 기독교 공공정책 발표회’에서 주요 대선후보 관계자들은 동성애 반대 목소리를 냈다. 문재인 후보 측 김진표 의원은 “우리 민법상 동성혼은 허용되어 있지 않으며, 동성애 동성혼은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출산율이 세계적으로 낮은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동성애 동성혼을 사실상 허용하는 법률 조례 규칙이 제정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 측 문병호 최고위원은 “동성애·동성혼은 절대 반대한다. 동성애·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제도는 오히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역차별이다”라고 말했다. 홍준표 후보 측 안상수 의원과 유승민 후보 측 이혜훈 의원도 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의사를 밝혔다. 차별금지법은 성별·장애·인종·출신 국가와 민족·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처벌할 수 없으며 위반할 경우 벌금 등을 물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대선 주자 중 차별금지법 찬성 의사를 밝힌 후보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35개 OECD 회원국 중에서 동성애 수용도가 가장 낮은 나라는 터키이며 한국은 하위에서 네 번째이다. 퓨리서치센터가 2013년 6월 발표한 ‘동성애 수용도 조사’에서 체첸을 포함한 러시아의 경우 “동성애를 사회가 받아들여선 안 된다(#1)”고 응답한 비율은 74%였다. “동성애를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2)”고 응답한 비율 16%에 그쳤다. 터키와 한국의 경우 ‘#1, #2’가 각각 ‘9%, 78%’ ‘39%, 59%’였다. OECD는 성소수자를 인정하려는 태도가 확대될수록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능력이 급격히 향상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소수 집단에 대한 포용성이 높아질수록 대체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에 대해 더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LGBT에 대한 차별을 줄일수록 경제적 성과도 좋아진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을 중단하고, 차별을 시정하려는 사회와 정치권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리뉴스] 대선 주자들, 성소수자·‘차별금지법’ 관련 발언 변천사
▶[정리뉴스]대선주자들의 인권 척도···‘차별금지법’ Q&A
▶[기타뉴스] OECD는 왜 LGBT 차별 해소를 시급한 과제로 제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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