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영재 Jun 07. 2017

밥 딜런, “오 뮤즈여, 그 노래로 이야기를 말해주오”

밥 딜런, 반년 만에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 제출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 그것만이 중요할 뿐.”

 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의 수상 강연을 한 마디로 간추린다면 이 문장이 적절해 보인다. 딜런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지 반년만에 수상 강연을 마쳤다.

 사라 다니우스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은 5일(현지시간) 한림원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밥 딜런의 강연을 전달받았다”며 “기대했듯이 강연은 비범했다”라고 밝혔다. 

 강연은 노벨상 수상자의 의무이다. 노벨상 상금인 800만 크로나(약 10억 원)를 받으려면 이 강연을 해야 한다. ‘강연’은 공연, 영상, 노래 등 다양한 형태로 제출 가능하지만 반드시 수상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한림원에 전달돼야 한다. 

지난해 10월19일 독일 프랑크푸트트 도서전에서 한 남성이 밥 딜런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Photo by Hannelore Foerster/Getty Images/이매진스

 대체로 노벨상 수상자들은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는 걸 겸해 이 강연을 한다. 하지만 평생 격식을 차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딜런은 이 수상식을 통째로 건너뛰었다. 대신 자신의 강연을 글로 쓴 후 이를 녹음해 스웨덴 한림원에 제출했다. 강연을 녹음해 제출하는 형식으로 마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캐나다의 소설가 앨리스 먼로도 노벨상 수상 강연을 미리 녹화한 영상 강연으로 대체했다. 

 딜런은 지난해 12월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간단한 수상소감을 스웨덴 주재 미국 대사를 통해 전달했다. 노벨상은 올해 4월 스웨덴을 찾아 개별적으로 받았다. 일반적인 수상자와 달리 행동했지만 딜런이 노벨상 수상을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니다. 다니우스는 이날 “지난해 10월 딜런은 사무총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결코 노벨 문학상 수상에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이를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딜런은 음악인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서는 안 된다는 일부의 비판을 의식한 듯 문학이 어떻게 자신의 음악에 영향을 줬는지를 강연의 중심에 뒀다. 딜런은 강연 첫머리에서 “처음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나의 노래가 어떻게 문학과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야 했다”며 “그 연결 지점이 어디 있는지 고민하고 이해하길 원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 결과를 여러분에게 설명하려 한다”며 “완곡한 방식일 테지만 내가 말하는 바가 가치 있고 중요하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약 27분 동안의 강연에서 자신의 음악에 커다란 영감을 준 음악인과 음악, 문학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첫 부분에서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로큰롤의 선구자 버디 홀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와 홀리는 각각 18살, 22살 때 단 한 번밖에 만나지 않은 사이였지만 딜런은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그에게서 친밀감과 동질감, 형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딜런은 “버디는 내가 사랑했던 음악을 연주했다. 컨트리 웨스턴과 로큰롤, 리듬 앤 블루스. 그는 이 세 종류의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엮어냈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상상력이 풍부한 가사, 여러 음색이 섞인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딜런은 홀리의 음악을 “내가 그렇지 못했던, 그렇지만 그렇게 되길 원했던 모든 것”이었다고 표현했다. 홀리는 첫 만남 후 며칠 만에 비행기 추락으로 숨졌지만 딜런에게 “강력하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위엄 있는 존재”로 남았다.

 딜런은 듣던 순간 자신의 인생을 그 즉시 변화시켰던 노래로 ‘코튼 필드’를 들었다. 딜런은 “(이 노래는) 전혀 몰랐던 또 다른 세상으로 날 옮겨놓았다. 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둠에 빛이 들면서 누군가 나의 손을 잡은 듯했다”라고 말했다. 

 코튼 필드가 딜런을 포크와 리듬 앤 블루스의 세계로 인도했다면, 그의 음악에 이야기를 입힌 것은 “학교 문법 시간 때 배운” 문학 작품들이었다. 딜런은 강연에서 그의 음악에 영향을 준 세 편의 소설을 소개했다. 모비 딕(허먼 멜빌),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오디세이아(호메로스)이다.

 ‘모비 딕’에는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뒤 복수에 눈이 먼 에이허브 선장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같은 경험에 서로 상반되게 대응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예수의 부활과 같은 기독교와 불교, 힌두교 등 종교와 신화 속 이야기들도 은유적으로 담겨있다. 이 소설로 딜런은 이야기 속에 여러 상반된 성격의 인물들을 엮는 방법을 배웠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전쟁 속에서 예술가가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딜런은 강연에서 전쟁의 폭력성과 비이성, 불합리함을 깨닫게 해주는 소설 속 여러 대목들을 소개했다. 그는 “이 책을 내려놓고 표지를 덮은 뒤 다시는 또 다른 전쟁 소설을 읽고 싶지 않았고,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오디세이아’는 다른 많은 음악가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노래에도 영감을 줬다고 평가했다. 딜런은 지하 세계의 왕으로 살기보다 살아있는 세상의 노예가 되길 원했던 오디세이아 속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음악 역시 살아있는 존재임을 강조했다. 그가 말한 살아있는 음악이란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고, 즐길 수 있는 무언 가이다. 문학과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런 의미를 담아 강연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은 호메로스의 말로 끝맺었다. “오 뮤즈여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오. 그 노래로 이야기를 말해주오.”


다음은 밥 딜런의 강연 중에서 추린 문장들이다. 


“내가 나만의 노래를 쓰기 시작했을 때, 포크의 언어가 내가 아는 유일한 단어였고 그걸 사용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무언가도 갖고 있었다. 나에게는 원칙과 감수성, 세상을 잘 이해해 갖춘 견해가 있었다. … 나는 그 모든 것을 학교 문법 시간에 배웠다. 돈키호테, 아이반호,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 두 도시 이야기 등과 같은 전형적인 문법 수업의 읽을거리들은 삶을 생각하는 방식,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들을 준다. 나는 작곡을 시작했을 때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이 책들의 주제들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나의 많은 노래들에 들어왔다. 나는 이전 들었던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노래를 쓰길 원했고 이 주제들은 근본적인 토대였다.”


“또 다른 배의 선장, 부머는 모비에 팔 하나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받아들였고 살아남은 것에 행복했다. 그는 복수에 대한 에이허브의 열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 이 책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경험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수수께끼 같은 죽음과 고통의 소용돌이에 빠진 채, 당신은 절멸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다. 당신은 지도 위에서 치워진다. 한 때 당신은 피아니스트가 되는 큰 꿈을 갖고 있던 순진한 청년이었다. 인생과 세상을 사랑했던 당신이 이제 그걸 쏘아 조각을 내려한다.”


“삶이 당신 주변에서 무너져 내리고 포탄이 쌩쌩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이곳은 지옥의 낮은 곳이다. 진흙과 철조망, 쥐가 들끓는 참호, 죽은 이의 내장을 파먹는 쥐들, 오물과 대변으로 가득 찬 참호. 누군가 외친다. 이봐, 거기 당신. 일어라 싸워라. 이런 엉망진창인 상태가 얼마나 계속될지 누가 아나. 전투는 끝이 없다. 당신은 파멸당하고 있다. 당신의 다리는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있다. … 누가 여기서 이득을 보는가. 지도자와 장군들은 유명세를 얻고 다른 많은 이들이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더러운 일을 하고 있다.”


“수천 년 전의 모든 문화들, 철학자들, 지혜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소크라테스-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가. 전쟁을 예방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이 모든 것들은 뭘 의미하는가. 나 자신과 다른 많은 작곡가들은 이런 매우 같은 주제들에 영향을 받았다.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다양할 수 있다.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필요가 없다. 나는 온갖 것들을 내 노래에 써넣었다. 나는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걱정하지 않는다. 멜빌이 구약성서와 성서적 이야기, 과학 이론, 개신교의 신조, 그리고 바다와 항해에 관한 모든 지식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집어넣었을 때 난 그가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걱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음악은 생명 있는 것들의 땅 위에 살아있다. 하지만 음악은 문학과 다르다. 노래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불러질 것으로 의도된 것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말들은 무대 위에서 행해질 것으로 의도된 것이다. 노래 속 가사들도 마찬가지로 불려질 것이지 종이 위에서 읽히는 것이 아니다. … 다시 한번 호메로스의 말로 돌아가 본다. 오 뮤즈여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오. 그 노래로 이야기를 말해주오.” 

작가의 이전글 체첸의 동성애자들은 오늘도 죽음의 위협 앞에 놓여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