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EIGHT 에피소드 1
매일 아침 샤워를 하며 나쁜 습관이 하나 생겼다. 마치 ‘백곰 효과’처럼, 과거를 후회하지 말자고 다짐할수록 후회스러운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것이다. 오늘 아침 샤워 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미팅에서 W 업체는 갓 출고된 제안 샘플을 두고, 아예 새로운 디자인으로 다시 샘플을 보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순간 짜증이 치밀어 ‘이 친구들과 계속 일하는 게 맞을까?’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화살은 곧 나에게로 돌아왔다. 엄연히 의류 생산에는 문외한인 그들이기에, 애초에 샘플을 의뢰할 때 디자인이 변형될 여지가 없도록 더 명확히 설명하고 이해시켰어야 했다.
‘아직도 이런 일로 후회해야 하나. 미리 점검해서 문제 요소를 없애지 못했구나.’
“왜 깊고 넓게 생각하지 못하는가?”
이는 매일 빠지지 않는 자책이다. 또다시 후회하고 자책하는 내 모습에 씁쓸함이 남았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이런 성향은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학창 시절, 나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시답잖은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였다. 남들과 조금 달랐던 점이라곤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 같은 JRPG 게임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과 다양한 음악을 즐겼다는 것뿐이다.
고교 졸업 전, ‘대학 가요제’라는 목표 하나만으로 이름 없는 학교의 애니메이션과를 선택한 것은 깊이 고민하지 않는 성격이 빚어낸 엄청난 과오였다. 그건 단지 취미였을 뿐인데 말이다.
고교 시절의 이야깃거리라면 지금은 ‘배모 플랫폼’의 창업주가 된 김 모 군과의 추억 정도다. 1, 2학년 내내 붙어 다녔던 친구였으나, 3학년 2학기부터 취업을 핑계로 각자 사회로 나가면서 연락이 끊겼다. 사실 추억이라기보다는 그 역시 시답잖은 고교 생활의 일부였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거나, 매점에서 사 온 간식을 수업 시간에 몰래 먹고, 하굣길에 당구를 치는 등 어설픈 불량 학생의 표본들이었다.
다만 그는 가끔 하늘을 보며 뭔가 생각에 잠기는 행동을 하곤 했다. 당시 그의 부모님이 명동에서 장어집을 하셨는데, 하루는 그가 도시락 반찬으로 장어구이를 싸 온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촌놈이었던 나는 처음 먹어본 음식이 너무 비려서, “이렇게 비린 걸 어찌 먹냐?”라며 무안을 주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내뱉는 버릇은 그때도 여전했던 모양이다.
나는 현재 여성 의류 쇼핑몰의 옷을 대신 만들어 주는 일을 한다. 좀 멋있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가끔은 스스로를 ‘디자인 서포터’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중 W 업체는 동대문 도매 상가에서 옷을 사입해서 팔던 친구들이다. 2025년 봄, 몇몇 아이템으로 시작한 인연은 현재 그들의 자체 제작 상품 전체를 내가 도맡는 일로 커졌다. 흔히 말하는 ‘프로모션’이나 ‘제작 대행’이 내 역할이다. 많은 의류 쇼핑몰이 자체 제작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나 같은 프로모션 업체에 실무를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던 중, 그들은 가을부터 기존의 사입 쇼핑몰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론칭했다. 일이 이렇게 늘어날 줄도, 그에 비해 수익이 이토록 적을 줄도 미처 몰랐다. 늘 해오던 일이라며 너무 안이하게 여긴 탓이다.
옷을 직접 만드는 공정을 모르는 이들과 일하는 어려움은 A 업체와의 초기 경험으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사입’으로 성공했던 경험과, 내가 옷을 ‘디자인’해서 판매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 차이를 너무 쉽게 본 것이다.
처음 브랜드 론칭 계획을 들었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다. 기존 제품들은 철저히 중저가에 맞춰져 있었기에, 원단부터 봉제까지 모든 면에서 질적 수준을 높여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던 걱정은 잠시였고, 금세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뇌가 요동치듯 몸과 마음이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내 목표 중 하나인 ‘브랜드 론칭’을 가장 가까이서 서포트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성공시켜 안착시키고, 그때 멋지게 헤어지자.’
그런 각오가 생겼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예전부터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거래가 종료되는 것을 ‘헤어진다’고 표현해 왔다. W 업체가 내 예상보다 덩치가 커지면, 내가 계속 맡는 것은 핏이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서다. 일에서도 이별할 때는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첫 시즌 제품들이 나오기 전까지 이어진 미팅은 즐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스타일과 스케줄, 브랜드 오너의 마음가짐, 그리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나는 샤워 시간에 반추했던 지난 후회들, 직접 겪은 일화들, 책에서 읽어둔 아이디어들을 모두 끄집어냈다. 정말 내 일이라 생각했기에, 그 어떤 숨김도 없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흥분은 잠시였다. 천천히 걸어오는 그들과 달리, 나는 숨 가쁜 레이스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손발을 맞추던 동료의 이탈로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나가야만 했다. 그것은 마치 든든한 파티원 하나 없이 홀로 고난도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는 RPG 게임과도 같았다.
흔히 말하는 ‘컬렉션 디자이너’와 나 같은 일을 하는 디자이너의 결정적인 차이는 명확하다. 우리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아니, 굳이 하지 않는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곳에서 창조적인 행위보다 더 칭찬받는 가치는, 철저히 ‘팔리는 옷’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클라이언트가 돈을 벌게 만들고, 그 이익을 나누어 갖는 사람들이다. 고정된 급여가 아닌, 성과에 따른 일종의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같은 프로모션이라도 샘플을 진행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보통은 클라이언트가 가져온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요구사항을 반영해 수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한 내가 거쳐 온 수천 개의 디자인 아카이브 중에서, 클라이언트의 톤 앤 무드에 맞는 옷을 먼저 제안하려 애쓴다. 이는 단순한 심부름꾼에 그치지 않고 ‘디렉터’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는 내 의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옷들이 이미 시장에서 검증을 마친, 살아남은 디자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는 브랜드의 정체성은 명확하다. 매니시하면서도 페미닌한, 거기에 고유의 빈티지 레시피가 녹아든 룩이다. 다른 복잡한 사정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스타일 그 자체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처음 옷을 만드는 사람들 대다수가 공통적으로 품는 생각은, 오직 ‘우리만의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욕심이겠지만, 브랜드는 처음부터 완성된 채로 태어나지 않는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일지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브랜드란 결국 ‘완성’된 상태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들여 서서히 ‘만들어가는’ 것이다.
브랜드 론칭을 선언한 후 첫 회의에서 내가 가장 강조했던 포인트는 우리 브랜드의 ‘지속적인 러닝(Running)’이었다. 내 경험상 브랜드가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핵심 요소는 단연 지속성이기 때문이다.
많은 소규모 브랜드가 첫 시즌부터 잘될 거라는 환상을 품고, 가진 모든 자금과 에너지를 초반에 쏟아붓곤 한다. 하지만 브랜드는 결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긴 호흡으로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 초반에 무리하면 자금 조절이 안 돼, 정작 다음 시즌을 이어갈 동력을 잃고 소리 없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문제는 그들의 환상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체하지 못했던 내 흥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제안한 초기 디자인들은 내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했다. 기존의 틀을 깬 변형된 워크웨어들. 프렌치 워크 재킷, 밀리터리 재킷, 보트넥 스트라이프 티셔츠, 카펜터 팬츠 등 하나같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고민할 틈도 없이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고, 곧바로 제작에 착수했다. 깊게 고민하지 않는 나의 고질적인 성향이,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금 고개를 든 것이다.
샘플에 재샘플을 거듭한 끝에, 최종 컨펌 샘플은 다행히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완성됐다. 하지만 메인 발주 단계로 넘어가자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려왔다. 브랜드 론칭 초기부터 내가 줄곧 우려했던 ‘준비 시간 부족’이, 결국 예견된 현실로 닥쳐오기 시작한 것이다.
원단 출고 지연은 예사였고, 옷의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게 미리 제작해 둔 라벨도 골칫거리였다. 무엇보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아이템의 가짓수는, 동료 없이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무게였다.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며 그나마 내가 담당할 품목은 철저히 ‘다이마루’와 ‘직기’, 두 가지 카테고리로 한정했다. 현장 용어로 다이마루는 티셔츠나 맨투맨처럼 신축성 있는 편직물을, 직기는 셔츠나 재킷처럼 짜임이 탄탄한 우븐 원단을 뜻한다.
이유는 명확했다. 내가 매일 수백 장씩 출고하며 가장 능숙하게 다루는 주력 분야였기 때문이다. 반면 데님이나 니트, 모자 등은 이른바 ‘특종’이라 불리는 전문 영역이다. 이들은 공정의 볼륨이 크고, 제대로 만들려면 훨씬 긴 준비 기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천만다행으로 그 까다로운 니트와 데님은 다른 전문 업체에 맡겼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내 몫의 품목에만 온전히 집중하면 될 터였다.
하지만 그 안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발목을 잡은 건 내 안의 ‘오지랖’과, 조금 더 안다는 이유로 부린 ‘잘난 척’이었다. 선을 넘나들며 자초한 과욕 탓에, 나에게는 서서히 탈진(Burnout)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