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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은비 Oct 22. 2021

청춘의 어두운 단면들, 그럼에도 기어코 제시하는 희망

[리뷰]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 아트나인 영화관에서 발행하는 '페이퍼나인' 10월호에 실린 글에서 수정된 리뷰입니다.




청춘의 어두운 단면들, 그럼에도 기어코 제시하는 희망


- [리뷰]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늘 함께하며 웃음을 쏟아놓던 다섯 명의 고등학생들은 이내 스무 살을 맞이한다. 영화는 혼란스럽지만 씩씩한 이들의 스물 시절을 조명한다. 가족 간의 불화, 가부장제, 가난 등 그들은 각자 다른 가정 환경의 영향 아래 서로 다른 생활을 꾸려 나간다. 우리는 이들이 각자 머무르는 공간, 즉 속해 있는 어느 환경의 힘에 압도당하는 것만 같은 프레이밍을 자주 보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증권회사에 취직한 혜주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야망으로 활기가 넘친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문득 회사 안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다.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바라보는 그의 멍한 얼굴이 프레임에 공허하게 담긴다. 태희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업소에서 아무런 흥미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일을 강제로 하고 있다. 그는 내내 고통받고 있는 가부장적 가정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한다. 지영은 텍스타일 디자인이라는 확실한 꿈을 가지고도 극심한 가난 때문에 벌이를 위한 이런 저런 일에 뛰어든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집의 형상이 꼭 그녀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불안감을 일으킨다.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이 정처 없이 움직일 때마저 이들 옆에는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과 빠르게 움직이는 차량이 지나간다. 환경의 힘에 휘둘리어 지쳐 무력한 얼굴들과 애써 그 환경에 파묻히지 않으려 박차고 일어나는 굳은 얼굴들. 겉보기에는 얼핏 비슷한 표정일 수 있으나 내적으로 절망과 희망을 넘나드는 치열한 청춘의 모습이 형상화된다. 영화는 청춘이라면 대부분 거쳐야 하는 필수 관문과도 같은, 머물던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양한 성격과 태도의 인물들을 통해 다채로운 청춘의 모양들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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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다섯 친구들은 학창시절과 달리 점점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생겨난다. 아직 어리고 불안정해 자신만의 사고방식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은 자기중심적 비교와 몰이해의 태도를 거듭한다. 이들 무리 중에서도 과거 유난히 친하던 혜주와 지영은 현재에 사이가 멀어지다 못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일궈내는 인물은 바로 태희이다. 그 역시 자신과 다른 친구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지만 끊임없이 친구들에게 관심을 쏟는 태도에 있어서 다른 친구들과의 차이점이 있다. 


이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데 친구들의 관심마저 잃게 될 때 영화의 쓸쓸함은 고조된다. 영화는 이들 사이에 오가는 고양이를 통해 돌본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제일 취약하고 막막한 상황에 놓인 지영이 먼저 길에서 떠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를 시작으로 고양이는 차례차례 이들에게 맡겨진다. 성인이 된 이래로 서로에게 이전처럼 관심을 갖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과도 같이, 지영을 제외한 친구들은 모두 고양이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며 낯설어 하고 서툴게 대한다. 


영화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행위는 곧 이해가 전제되지 않더라도 우선 관심을 계속 주며 들여다보는 일을 상징한다. 일단 주변의 존재들을 돌보려 노력하는 일. 그 노력으로 청춘들은 자신과 다른 삶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그렇게 성장한다. 영화는 지영과 태희를 통해 결국에는 긍정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각자의 환경에 매몰되는 기분, 사회적 시선에 주눅드는 마음, 서로 다른 형편에 의해 커지는 친구들 간의 간극, 자신에 대한 몰입으로 인한 주변에 대한 무심함. 감독은 이러한 청춘의 어두운 단면들을 예리하게 풀어내면서도 희망의 밝은 기운을 전한다.






<고양이를 부탁해>

(Take Care Of My Cat, 2001)

드라마| 112분| 12세이상관람가

감독 정재은 출연 배두나 옥지영 이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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