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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은비 Jul 24. 2024

지난 사랑에 대한 찬가

-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2021년에 완성한 평론입니다.



사랑에 휩싸인 프레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이다. 주체의 시선과 그 시선에 담긴 대상의 외형이 프레임을 한껏 채운다. 영화의 사운드는 사랑이 일으키는 격정적인 감정의 파동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토록 열렬한 생명력이 피어오르는 순간들을 목격한다. 프레임에는 사랑에 따르는 운동성이 나타난다. 타오르고 진동하는 장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18세기 말, 여성 화가 마리안느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의 초상화 의뢰를 받고 브루타뉴의 외딴 섬에 있는 저택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 엘로이즈의 어머니는 딸의 결혼 상대인 밀라노의 귀족 남성에게 딸의 초상화를 보내기 위해 마리안느에게 초상화를 부탁한다. 이미 초상화로 그려지기를 거부한 적 있는 엘로이즈에게 마리안느는 산책 친구로 접근하여 비밀스럽게 초상화 작업을 시작한다. 둘은 점차 거리를 좁히며 밀접해지고 이내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어머니가 집을 비운 며칠 동안 하녀 소피,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시대적 관습과 통념을 허물며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 그러나 어머니가 집에 돌아온 후 단꿈과도 같았던 시간은 끝이 난다.



관찰에서 인지로 발전하는, 사랑의 응시

영화는 화가인 마리안느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대부분의 장면들이 그의 시점쇼트와 그의 내면이 반영된 극히 주관적인 쇼트로 구성된다. 그녀가 사랑하는 대상 엘로이즈는 러닝타임 내내 단독으로 프레임과 프레임 속 화폭에 담긴다. 카메라는 마리안느의 시선으로 엘로이즈를 주목하고 우리가 엘로이즈에 대해서 마리안느의 인지 범위만큼만 알도록 한다. 


초반부에서 엘로이즈의 분노에 찬 얼굴은 점차 마리안느를 향한 호기심 어린 얼굴로 변화한다. 눈썹과 입술의 움직임, 눈의 깜박임, 작은 손동작까지 그의 신체적 미동이 프레임에서 두드러진다. 어깨의 떨림과 숨소리를 통한 불안정한 호흡까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된다. 영화에서 미장센은 이를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성을 갖고 구성된다. 후경은 심도가 얕은 배경으로 설정되고 인물들이 중앙을 기준으로 균형 있게 배치된다. 더불어 인물들과 함께 카메라 역시 정적이며 느릿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인물의 미동이 선명하게 인식된다. 그들의 수줍음과 설렘, 긴장과 불안 따위의 사랑이 피워 올리는 갖은 감정들이 신체를 통해 섬세하게 가시화된다. 영화는 우리에게 거듭 인물들의 초상을 제시하며 사랑의 주체이자 대상으로서 인물들의 응시라는 사랑의 행위를 체험하게 한다. 응시는 또한 관객의 본질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 속 응시의 행위에 더욱 쉽게 이입된다.


마리안느의 눈에 대상화된 엘로이즈의 원숏들은 일차적으로 일방향적이라 느낄 수 있는데 곧 우리는 그 프레임의 양방향적 성격을 알아차릴 수 있다. 오직 엘로이즈만 담긴 화면에서 그를 응시하고 있는 마리안느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임에 담기는 엘로이즈의 특정 신체 부위나 움직임은 그 순간 마리안느가 선택적으로 주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엘로이즈의 푸르던 눈이 검은 눈으로 변해 있는 장면이나 그의 외형이 모닥불 연기와 겹쳐 너울거리며 보이는 장면 등에서는 보다 명확히 마리안느 내면의 주관성이 반영된다. 이 같은 쇼트들은 마치 작가의 주관적인 표현이 담긴 그림과도 같다. 그리고 이는 엘로이즈와 사이가 깊어지게 되면서 변화한 마리안느의 주관적인 화법과도 연결된다. 마리안느는 규칙과 관습을 중요시하며 절제적으로 그리던 이전과 다르게, 엘로이즈를 그리며 점점 감정과 생명력을 담아 자유롭게 표현한다.


또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시점쇼트들은 서로 마주보는 행위가 동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나타낸다. 신분 제도가 엄연한 시대에서 두 사람은 서로 신분이 다른 상황이지만 평등에 기반한 사랑의 관계를 이룬다. 그려지는 입장인 더 높은 신분의 엘로이즈와 그리는 입장인 더 낮은 신분의 마리안느. 두 사람은, 피사체를 관찰하며 화폭에 그리기에 적합한 물리적 거리를 무시하고 가까워지면서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 가까워진 두 사람은 보는 행위에서 만지는 행위로 나아가고 내밀한 마음을 나누며 교감한다. 대상에 대해 단순히 외형을 관찰하는 행위에서 나아가 가까이에서 감각하고 지각하여 깊숙한 인지에 도달한다. 그렇게 사랑의 목적지에 도착한다. 마리안느는 더 이상 엘로이즈를 들여다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림과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랑

그렇게 얼굴이 없거나 얼굴을 잃은 두 편의 불완전한 초상화를 거쳐 마침내 최종적으로 엘로이즈의 깊이 있는 초상화가 완성된다. 마지막 초상화는 둘의 상호 작용을 통한, 화가와 피사체가 모두 변화한 끝에 이뤄낸 결과이다. 엘로이즈는 초반부에서 마리안느보다 앞서 걸으며 얼굴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이후 먼저 마리안느를 기다리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엘로이즈의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게 된 것은 엘로이즈 역시 마리안느에게 자신을 한껏 드러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 초상화의 완결은 자신을 완전히 보여주고 상대를 속속들이 인지하는 행위의 완성, 즉 사랑의 결실인 것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그림이란 것은 단순 소재로 쓰이기를 넘어서 전반적으로 화면의 톤과 질감뿐만 아니라 영화의 서사화법까지 장악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형식적으로든 서사적으로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림은 두 주인공에게 현재 진행되는 사랑의 순간을 포착하는 수단이며 이별하고 나서의 미래에도 그 순간을 영원히 재생하기 위한 기록이다. 포착과 간직의 물질이며 기록의 행위 그 자체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또 하나 활용하는 것은 음악이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사랑을 할 때 절로 일어나는 강렬한 감정의 파동, 그 역동적인 생명력을 표현한다. 음악을 통해, 폭풍과도 같이 한번 시작하면 한동안 인물의 마음을 장악하고 뒤흔드는 감정을 기록한다. 음악이 중요하게 쓰이는 총 세 장면은 모두 두 사람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데 역시 영화 속 그림의 특징과 같이 현재성과 미래성을 함께 갖고 있다. 앞서 두 장면은 그들의 사랑이 격렬히 피어오르는 순간, 즉 사랑의 현재 순간의 격정적인 파동을 표현한다. 폭풍을 상징하는 긴박하고 어지러운 곡조의 음악(비발디의 사계 여름 3악장)이 인물의 떨림을 담은 이미지와 조화된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 있는 모습이다. 


엔딩의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이 이별하고 나서 시간이 다소 지난, 이별 후의 미래의 상황에서 지난 사랑을 떠올리고 회상하려는 행위와 맞닿는다. 음악이 프레임을 한껏 채우는 가운데 점점 클로즈업 되는 엘로이즈의 얼굴이 그리움과 슬픔과 환희로 변화한다. 지난 사랑을 재현하는 행위인 것이다. 음악 역시 그림의 쓰임과 비슷하게 사랑의 충만한 현재와 사랑이 끝난 미래에 회상의 수단으로 쓰인다.

인간에게 제일 생명력과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사랑의 순간들이 프레임에서 그림과 음악을 통해 전달된다. 그림은 멈춰 있고 음악은 흐른다. 그림은 마치 눈에 각인시키듯 찰나의 순간을 잡아두려는 표현인 반면, 음악은 정적인 이미지에서조차 한껏 동요하고 있는 인물 내면의 감정을 따라가며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현이다.



새로운 신화로 꾸려내기

그림과 음악은 나아가 인물들이 책으로 접하는 고대 신화와 결부되어 신비성을 낳는다. 리라 연주를 통해 신비하고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 오르페우스와 아내 에우리디케의 가슴 아픈 사별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처럼 순수하고 돈독한 사랑의 신화는 영화 속 새로운 풍경의 근대 세계 안에서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에 대입되어 새로운 모양으로 변모한다. 영화의 세계는 단순히 시대성이 달라진 것을 넘어서서 당대의 근대와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낯선 세계이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과거 18세기 말의 시대성과 틀어지는 모양은 분명 낯설다. 영화는 내내 특정한 시대성 안에서 비사실적인 광경을 창조한다.


우선 영화에는 당대에 실로 그러했듯 여성에 대한 억압적 관습이 존재한다. 이는 영화에서 주요한 갈등을 낳고 인물들을 구속하며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영화 안에서 인물들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존재로 엘로이즈 어머니가 등장하고 그가 곧 두 주인공이 넘지 못하는 한계로서 대표된다. 엘로이즈의 결혼을 강행하기 위해 마리안느를 고용한 어머니는 마리안느에게 경과를 체크하고 재촉하며 그 목적을 꾸준히 밀어붙인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관계가 변화하는 중에도 어머니는 심지어 화면에 등장하지 않고도 집 안에 있다는 존재감만으로 그들이 거듭 구속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어머니가 집을 비우게 되면서 집안에는 모든 관습들이 무너져 내린다. 하녀 소피,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등 세 여성은 신분에 있어서 분명 수직적인 관계이나 신분 구분을 두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서 우정을 이루기 시작한다. 세 여성은 할일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협력하며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는 완전히 신분이 역전된 광경이 자주 연출된다. 먼저 세 사람이 협력하는 주요 활동은 소피의 임신중절과 연결된다. 하녀의 일을 제일 긴급하게 여기며 나머지 두 사람이 그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몸조리가 필요한 소피는 가만히 앉아 수를 놓고 엘로이즈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장면은 보다 명확히 한 프레임 안에서 완전히 신분의 붕괴를 드러낸다. 거듭 한 화면에 세 사람 모두가 나란히 한 줄로 수평적으로 배치되는 구도는 이들의 평등한 관계성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평등의 미장센은 밤 축제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신분 차이 상관없이 함께 모여 하나의 노래를 부르는 여성들. 카메라가 여성들을 차례차례 오른쪽으로 수평으로 이동하며 담는다. 여성들은 역시 나란히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곡조의 음악은 마치 오르페우스의 신비로운 리라 연주처럼 생경하고 경이로운 분위기를 창조해낸다. 그 순간에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사랑이 활활 타오른다. 서로 멀찍이 서서 시선만 주고받는 이들을 둘러싼 강렬한 음악이 긴장감으로 팽팽한 둘 사이의 기류를 고조시킨다. 두 사람 곁의 여성들이 그 음악을 입을 모아 만들어내는 모양은 마치 둘의 사랑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내 엘로이즈가 넘어지자 마리안느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 그를 향해 모여드는 모습까지, 이 장면에서 보여지는 여성의 연대는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마치 여성의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지지하는 느낌마저 준다.


이렇게 시각적으로만 시대성이 감지될 뿐 관습은 완전히 깨진 채 신비로운 광경을 낳는 이 영화는 새로운 세계 안에 편입되는 신화 이야기 같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순수하고도 비극적인 사랑, 죽음이란 절대적인 한계 앞에서 깨질 수밖에 없는 신화 이야기는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돌아오면 즉시 깨지게 될 이 이상적인 세계와 두 사람의 동성애의 종말의 비유가 된다. 둘의 이별은 죽음만큼이나 절대 피할 수 없는 무력한 한계로 표현된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와 함께하면서도 문득 문득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엘로이즈가 있는 방으로 향하다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뒤돌아본다’. 그러면 늘 거기에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하얀 옷을 입고 가만히 서서 자신을 응시하는 엘로이즈가 있다. 곧 있으면 엘로이즈를 잃게될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나타나는 환영인 것이다. 뒤돌아보는 행위는 신화에서 이별의 계기가 된다. 이 이미지는 후반부에서 둘이 이별하는 장면에서 흰 웨딩드레스를 입은 엘로이즈의 모습과도 연결된다. 이별한 뒤 바로 완성된 초상화와 함께 얼굴도 모르는 이와 결혼해야 하는 엘로이즈의 운명에서 죽음을 떠올리는 마리안느의 시선이 반영된 장면들이다.



감독은 신비롭고 이상적인 비현실적 세계 속에서 두 여성의 순수하고 동등한 사랑의 시간을 직조하여,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와 같은 영화를 완성했다. 그 새로운 신화는 또 하나의 기록물이 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가시적인 외형과 비가시적인 감정 모두 찬찬하고 세심하게 포착하여 사랑을 농밀하게 기록한다. 사랑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간직한다는 두 가지의 목적을 실현하는 이 영화는 지난 사랑에 대한 찬가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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