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나요?

과도한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확대시킨다

by 솔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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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나요? 그런가요?


우리는 주로 노력하면 된다는 의식을 갖고 능력주의의 아래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오로지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아는가? 나는 이 책을 보진 않았지만, 내용을 대충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그동안 가져왔던 의문과 생각을 그대로 그리고 더 발전해서 갖고 계셨기에, 내가 굉장히 관심을 가졌던 분이다. 그리고 EBS에서 하는 <위대한 수업-그레이트 마인즈>의 <마이클 샌델과의 대화 공정을 말하다> 편을 봤다. 그는 자신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을 바탕으로한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 강연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nguyen-dang-hoang-nhu-cbEvoHbJnIE-unsplash.jpg 출처 Unsplash @nguyen-dang-hoang-nhu

공정하다고 알려진 것은 정말 공정한가?

우리는 대체로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과 같은 큰 시험은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토익이나 한국사 시험 같은 비교적 작은 시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은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모든 시험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험으로부터 좋은 성적을 얻었으리라 예상한다. 일부는 자신이 합격한 것은 오로지 내 노력 덕분이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위해 마련된 환경과 돈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공정하지 못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만의 노력만으로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라서 '시험은 공정한 절차를 거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오만함을 낳는다.

"내 힘으로만, 내 능력으로만 성공한 거야"라고 믿는 능력주의는 오만함을 낳기 쉽다. 모든 환경은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것이며, 나에게 주어진 재능과 상황이 디폴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환경이 갖춰진 집안에서 그 사람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능력주의의 폐해 속에서 나온 피해자 덕분도 포함되어있다. 즉, 상황과 여건이 허락되지 못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피해자다. 내가 지방이 아니라 서울에서 태어나서 SKY 대학이나 외국 유명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서울과 지방은 교육의 기회나 양질이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지방의 학생들이 성적 밑바닥을 깔아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SKY 대학 재학생의 반이 서울 출신이며, 고소득 집안이라는 통계가 있다.)

vasily-koloda-8CqDvPuo_kI-unsplash.jpg 출처 Unsplash @vasily-koloda

만약 중소 기업 공장의 사장과 직원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장은 당연히 직원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는다. 사장의 자녀는 많은 수익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 반면 직원의 자녀는 그보다 적은 수익으로 비교적 질이 나쁜 교육을 받는다. 사장이 기업을 운영하기에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사장이 자녀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해줄 수 있었던 건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있기에 기업이 돈을 벌고, 사장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직원들이 기업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보수를 받고 일한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장처럼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과연 사장이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만 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정말 자신만의 노력으로만 입사할 수 있었을까? 물론 노력을 했겠지만,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운이 따랐다는 점은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는 중소기업에 입사하면, 백수면, 늦깎이 신입사원이면, 취업 준비생이면 노력을 하지 않아 네가 대기업에 입사를 못하고, 취업을 못한 거고 늦게 취업한 것이라며 그들을 탓하고 그 자신도 자신을 탓한다. 모든 것에는 운이 작용한다는 것을 모르는 채로 말이다. 이게 과도한 능력주의의 폭압, 폐해다.


그러니까 지금 기득권층이 부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다수의 계층이 밑바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전국 부동산의 80~90%는 이미 기득권층에 차지하고 있고, 서민들이 나머지 10~20%를 두고 싸우고 있다고. 실제로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내 옆 사람이 아니라 윗 사람인데, 엉뚱한 데에 혐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이클 샌델은


성공 과정에서 빚을 졌다는 사실과
운의 역할을 잊어버릴 때,
엘리트는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이것이 사회에 분열을 일으킵니다.
분노와 적의를 낳죠


라고 말한다.


biao-xie-5EoKAdyStik-unsplash.jpg 출처 Unsplash @biao-xie

운도 노력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결국 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거라고.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력해서 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라'에서의 운은 진짜 운이 아니다.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운이 아니다. 노력해서도 얻어지지 않는 것이 운이다.


"나는 노력해서 운을 내 것으로 만들었어!"라는 사람들은 지금 큰 착각을 하는 것이다. 운이 좋게도, 노력을 한 게 좋은 성과가 나온 것이거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졌기에 운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착각을 한 것이거나 그게 진짜 운인데 운이라고 잘 캐치한 것이다.(앞서 말한 것처럼 성공한 자들은 운의 역할을 잊는다) 그러니까 모든 것에는 노력과 운이 작용하는데, 운은 노력에 따른 인과관계로부터 나온 결과가 아니라, 노력과 운은 인과관계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 성질이 다른 개별 가치이다. 내가 노력해서 운을 스스로 쟁취하는 게 아니라 운은 그냥 운인 것이다. "운칠기삼"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필기컷 근처에서 아슬아슬하게 필기 시험에서 합격했는데, 내가 면접을 잘 봐서 최종 합격했다"? 진짜 면접을 잘 봤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몰랐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 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그 날 면접관이 내 인상을 좋게 봤다든가, 이전의 면접자가 너무 못 봐서 내가 더 뛰어나다고 착각해서 평가되었거나(대비 효과), 같이 본 면접자의 컨디션이 안 좋았다든가, 면접 준비를 온전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든가, 면접 스터디 그룹에서 예상 질문으로 연습했던게 진짜 질문으로 나왔다든가 말이다. 이렇듯 운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예시는 내가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라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이는 명확한 운이다. A가 500개의 예상질문을 외웠지만 하나도 안 나왔을 수도 있고, B가 100개의 예상질문을 외웠는데 그 중 하나가 나왔다는 건 운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lottery-tickets-g752c29e91_1920.jpg 출처 Unsplash @lottery-tickets

능력주의를 완화시키는 도발적인 제안

그래서 마이클 샌델은 도발적인 제안을 한다. 대학 입시를 예로 들며, 일정 조건만 넘기면 나머지는 제비뽑기를 통해 학생을 뽑자고 한다. '제비뽑기'에 집중해서 하나를 간과할 수 있는데, 바로 '일정 조건만 넘기면'이다. 즉, 무작위 추첨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이든 프린스턴 대학이든 전교 1등부터 꼴등까지 모두 지원할 수 있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거나 성취한 것이 없는 학생을 무작위로 뽑자는 게 아니다. 자격이 있는 지원자가 입학 정원보다 많으니 '유능력자 제비뽑기'를 하자는 제안이다. 이는 능력주의를 아예 없애는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를 덜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만약 노력보다는 운이 더 작용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면, 지원자들이 노력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사라지지 않는 것 아니냐며 비판한다. 노력보다는 운이니까, 노력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마이클은 이 비판도 맞는 말이라며 수긍했다. 그리고는 "이런 시스템이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대학에 가기 위한 과도한 경쟁으로 어린 아이들이 압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으로 공부하려는 의지가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여전히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하는 라인까지는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덧붙여, 노력보다는 운이 작용하는 시스템으로 노력을 덜하게 되거나 동기가 안 되는 부작용이 발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노력과 성실함이 증명되고, 그를 통해 보상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운명론에 빠지면 인생은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다고 믿으며 회의주의에 빠지기 때문에 노력을 증명하는 시스템이 개발됨으로써 동기부여를 하고, 인생을 개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운명론에 맞서기 위해 나타난 것이 능력주의다. 내가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났는지는 상관없이 어떤 집안에 태어났느냐로 내 삶이 정해지는 운명론이 불공정하다고 느꼈기에 능력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 능력주의가 너무 퇴폐되어버린 것이다. 과도한 능력주의에서 '과도한'은 빼버리고 '운의 작용'을 넣자는 것이다.




객관적인 시험이 결과를 예측하기에 타당한가?

마이클 샌델은 대학 입학 시험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수능이라는 시험을 통해 얼마나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고, 나아가 얼마나 사회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는 아마 수능이 대학 첫 시험에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수능 시험은 좋지 않은 채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미국 사회를 바꾼 마틴 루터 킹의 사례를 들었다. 수능은 가장 객관적인 시험이라고 알려져있다. 수능을 포함한 공무원 시험이나 다른 모든 시험도. 하지만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알려져있는 시험이라도 확실히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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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라이 공업'이라는 기업이 생각난다. 그 기업은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인사 이동 시기가 다가오면 CEO 야마다 아키오는 종이에 전 직원의 이름을 적고, 선풍기로 날려 제일 멀리 떨어진 종이를 펼쳐 거기에 적힌 직원을 승진시킨다. 능력이 아니라 오직 운을 통해 뽑는다. CEO는 "선풍기로 명단을 날려 과장을 뽑았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라고 말한다. 이 사례를 보고 깨달은 점은, 오히려 능력주의는 능력 발휘를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미라이 공업처럼 수치화된 능력이나 객관적인 성과를 통해 승진시킨 것이 아니라 제비뽑기식으로 승진을 시켜도 기업은 계속해서 높은 매출을 달성한다. 만약 이렇게 뽑아서 매출이 하락한다면 좋지 않은 인사 이동 방법으로 결론이 나겠지만 실제로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물론 꼭 그 사람이 잘해서 회사가 잘 굴러가는 게 아니라 여러 영향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타당하다고 알려진 성과를 가진 사람이 일을 해야만 회사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특정한 시험의 점수, 교육을 통해 승진 시험을 봐왔다. 하지만 그런 수치에 가려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직원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자신이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시험에 떨어져서 만년 대리라며 신세를 한탄할지도 모른다.


되돌아와서, 우리는 수능이든 뭐든 시험 자체가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믿고 있고 능력주의가 만연해있기 때문에 '노력하면 뭐든지 얻어질 수 있는 세상'이라고 착각한다. 그렇기에 운은 배제하고 있으며, 애초부터 출발선이 다른 자들에게 '너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무시하는 것이다. 모든 게 공정하다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하다.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고도 "네가 노력하지 않아서 성공 못 한거야" 라는 말로 개인을 무시하는 게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공정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기도 하며 어느정도 지위가 있는 상태에서 바라 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미 성공했으니 이건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마이클은

노력보다 운을 더 중요시 여긴다면,
승자가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는
오만함을 줄이고
겸손함을 더 가질 수 있고,
패자는 능력주의에 따른 죄책감과
굴욕감을 느끼지 않을 것


이라고 말한다.

towfiqu-barbhuiya-oZuBNC-6E2s-unsplash.jpg 출처 Unsplash @towfiqu-barbhuiya

능력은 어떻게 정의해야하나?

<위대한 수업> 강연의 청강자는 이런 질문을 했다. "능력이 선천적인 것이라면, 능력주의는 정의롭지 않다. 반대로 능력이 후천적인 것이라면, 능력주의는 정의롭다. 그렇다면 능력은 어떻게 정의해야하는가?"


마이클 샌델은 "능력이란 많은 것들이 일치해야 하죠. 특성, 미덕, 재능, 기술, 사회적 명성 그리고 주어진 시기의 요건이 사회적 역할에 요구되는 자격과 일치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능력은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걸까요? 어느정도는 그렇겠죠." 그는 다시 수능을 예로 들어 말한다. "수능 같은 표준화된 시험은 능력을 측정하는 방법이에요. 수능을 잘 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측정하죠. 이런 노력은 대학 입시 제도에서 인정하는 능력, 기술, 지적 능력, 지식을 얻기 위한 시도라고요. 그런 관점에서는 능력을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는 두 사람이 똑같이 노력했지만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며 말한다. "가정이 부유한지 가난한지에 따라서, 또 가족이 공부를 장려하는지 무관심한지에 따라서도 다르죠. 기회의 측면에서 큰 차이가 생깁니다. 두 학생이 똑같이 노력하더라도요. 즉, 능력을 얻으려는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충분치 않단 겁니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받은 타고난 재능으로 성공했다면, 오만을 떨지 말고 자신의 이익을 모두와 나눌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마이클 샌델은

이 사회가 더 공정해질 수 있기 위해서는
노력보다는 운이 크게 작용한다는
인식이 퍼져야 하고,
불평등을 유발하는 모든 것을
다각도로 바라봐야 하며,
모든 직업을 평등하게 존중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능력주의로 인한
과도한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고 한다.


michael-dziedzic-W6l35A_rxxU-unsplash.jpg 출처 Unsplash @michael-dziedzic

과도한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또한 능력주의의 폭압은 승리자에게도 상처를 준다고 말한다. 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조차도 어릴 때부터 부모나 학교로부터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압박 아래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정서적 안정과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과도한 능력주의는 본질과는 다르게 부의 기득권 아래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이 사람의 잠재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력주의를 비판하며 변화를 꾀하고자하는 것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단순한 객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하는 일이다. 승리자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서 국가적 차원에서 유능한 인재를 발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능력주의의 폭압을 없애고, 일의 존엄성을 중시하며 경쟁 사회에서 멀어지려는 시스템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유토피아 같은 세상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시스템이 뚝딱하고 바뀔 일도 없을 뿐더러 지금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좌우하고 있는 기득권층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모여 큰 힘을 바꿀 수는 있지만, 능력주의의 폐해로 인해 "내가 성공하지 못하고, 내가 돈이 없는 것은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며 자책하는 마인드가 만연하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득권층이 원하는 서민들의 마인드다. 내가 성공하지 못하고 많은 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가 내 능력이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걸 깨닫는 순간, 많은 이들이 이 사회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 시위든 뭐든 할 것이다. 기득권은 자신들의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대물림 해야하기 때문에 능력주의의 폐해를 감추며, 과도한 능력을 점점 더 요구하는 세상으로 만들 것이다.


현재 기득권층은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나 자신들 혹은 그들의 자녀들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정신적으로 힘이 들지라도, 일단 기득권층이 되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고 자신의 파이를 지켜야한다고 생각해서 이 체제를 유지하려고 애쓸 것이다. 능력주의가 폭압이어도 상관없다. 돈은 충분하기에 돈을 많이 써서 질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유학을 보내고, 최고의 입시 코디네이터를 붙여줄테니 말이다.

barbara-krysztofiak-h86PF6MMO1U-unsplash.jpg 출처 Unsplash @barbara-krysztofiak

결론적으로

마지막으로 마이클 샌델은 자신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의 핵심 메세지를 말한다. "바로 우리의 능력주의적 오만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인생에서 운의 역할을 더 많이 인정해야 해요. 행운에 감사하면 겸손해질 수 있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민의 덕목은 겸손입니다. 겸손은 우리를 서로 갈라놓았던 가혹한 성공의 윤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걸음이 될 거예요. 모든 동료 시민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공동선의 정치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됩니다." 바로,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뒤바꿔서 생각해봐야하며 이 모든 것에 감사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 나오기 전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를 알기도 전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마이클 샌델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가 '노력보다 운이 더 중요하다'라고 얘기하는 것과 내가 '노력보다 운이 더 중요하다'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학자가 얘기하는 것은 그가 이뤄놓은 바탕과 업적이 있기에 설득력이 있고, 생각해볼만한 매력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아무것도 아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애초에 네가 노력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기 때문에 이를 합리화하려고 그저 운이 더 많이 작용한다는 핑계를 대는 것 뿐이다. 노력은 해봤냐?"라고 나를 깔보는 투로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88444_301667_1110.jpg <공정하다는 착각>,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아이러니하게도, 능력주의의 폭압이라며 이를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능력주의의 폭압에서 나온 수혜자다. 마이클 샌델도 이토록 유명해진 데에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운도 따랐을 것이다. 그의 가정환경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20세기에 태어났으며, 중상위계층에서 자랐기에 교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태어난 나라, 시기, 돈 때문에 허덕이며 바닥을 온몸 다 바쳐 깔아주는 동안 마이클 샌델은 이를 발판으로 써서 지금의 사회적 지위에 올랐을 것이다. 그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오만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이클이 말한 대로 그가 대단한 커리어를 이룬 것은 노력보다 운이 더 따랐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운은 능력주의라는 멋있는 말로 포장되어 그가 더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주어진 환경은 배제한 채, 그의 똑똑함에 감탄만 하면서 그를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가 싫다는 것도 아니고 열폭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마이클 샌델에게 정말 감사하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의 사람이 이 능력주의를 비판하며 소외되고 무시되어왔던 반대 계층을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쓰고 있으며, 머무르지 않고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사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 내 주장에 대한 뒷받침이 타당하게 보이고, 더욱 더 힘이 실려서 마이클 샌델이 이런 주장을 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묻힐 것이다. 나는 마이클 샌델처럼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이 유명해지려면 많은 곳에 노출되어야 한다. 블로그 뿐만 아니라 브런치, 얼룩소에도 올릴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이웃님들도 이에 반대되는 의견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공유를 해주신다면 좋겠다. 더 유명해질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유명해지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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