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zuko Mori - 리스본에서 온 편지
아무와도 연락을 할 수 없어 답답했고 원할 때 듣고 싶은 노래를 듣지 못했다. 가장 짜증 났던 건 구글맵을 쓸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오십 미터 건너 한 명씩에게 길을 물었고 듣고 싶은 노래는 입으로 불렀다. 옆에 있던 사람에게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도 길을 헤맸고 노래는 자꾸 가사를 까먹었다. 난생처음 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건 왠지 너무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막막함이 좋아졌다. 나는 나를 다 설명할 이유 없이 다른 걸 신경 쓸 필요도 없이,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 상황에서 원하는 행동을 하고 그때그때 느껴지는 대로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자유가 느껴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버스시간을 기다리며 내 평생 다시 올 일 없을 것 같은 그 조용한 동네의 해 질 녘을 봤다. 구글 맵이 아니라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세일 전단지로 마트의 존재를 추정해가며 내 평생 다시 올 일 없을 것 같은 어느 식료품점에서 1유로짜리 맥주를 샀다. 병따개 없이 손으로 따느라 거품이 가득해진 맥주를 마시면서,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제법 간절하게 했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씩 생각난다. 그 맥주, 이름이 뭐였을까?
길을 가면서 더 이상 멈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내 앞을 걷는 사람들의 사진을 실컷 찍었다. 오늘 처음 만난 내 동행자들의 추억을 만들어주는 일이 딱히 할 일 없는 내게는 가장 일 순위가 되었다. 웃는 모습, 풍경을 보고 감탄하는 모습, 사진 찍는 모습 수많은 모습을 찍었다. 그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내 첫 우선순위가 된다는 건 이상하면서도 짜릿한 일이었다.
이상한 하루였다. 휴대폰을 변기에 빠뜨리며 시작된 기분 나쁜 여행이었다.
여행 중 가장 오랫동안 버스를 기다린 날이었고, 가장 짧게 여행지를 둘러본 후 막차를 잡으러 가장 빨리 정류장까지 뛰어간 날이었다. 어쩌면 버린 시간이 가장 많았던 하루였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많은 셔터를 누른 날이었다. 누군가 다녀가서 사진으로 본 길이 아니라 내 세상에서는 처음 가보는 길을 걸었던 날이었다. 가는 버스 안에서 창문 가득 바다가 보일 때 전달해 줄 사람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점점 조용히 바라보게 되었던 날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곧 쓰러질 것 같은 몸을 뉘이면서도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게 한,
그런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