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드북' 210615, 210617 20:00을 보고
*이 글은 뮤지컬 ‘레드북’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레드북'은 금지된 것이 많던 시기 런던에 살던 안나라는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안나는 어린 시절 소중한 사랑을 했고, 그것을 약혼자에게 솔직히 밝힌 후 파혼당하고 집에서 쫓겨나 일자리를 찾으며 방황하는 신세가 된다. 억울한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가 예전에 자신이 하인으로 일하던 바이올렛이라는 할머니의 손자가 바이올렛의 유산을 들고 찾아오고, 그 브라운이라는 남자에게 요청하여 안나는 그의 타이피스트로 고용된다. 그러던 중 여성들이 쓴 글로 만든 여성들의 잡지를 만드는 로렐라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고, 그의 문학회에 회원으로 참석하여 다른 여성들과 함께 그 시대엔 금지되어있던, 솔직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가 레드북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다. 그리고 그 문제적 작품 레드북과 얽힌 여러 사건들로 인해 안나는 재판장에 서게 되고,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안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통해 자신과 같은 많은 여성들의 삶을 위로한다. 그 시대는 여성이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지도 못하던 시기이며,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금지된 행위였다. 실제로 로렐라이가 판매하러 다니는 잡지는 여성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서점에서 판매를 거절당하며 방문판매 역시 실적이 좋지 않다. 로렐라이의 잡지를 보고 하는 서점 주인의 대사가 그 시대 여성의 글쓰기, 여성 문학에 대한 생각을 대변해준다. 여자가 무슨 글을 쓰냐고, 보나 마나 별로일 게 뻔하고 얌전히 읽기만 하는 게 여성의 역할이라고. 하지만 로렐라이 문학회 여성들은 자신을 북돋아주는 로렐라이의 응원과 채찍질에 힘입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자신의 성 이야기를 솔직히 고백하고, 욕망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북돋아주며 여물지 않은 언어들을 모아 문학으로 성장시킨다. 글자로 성을 쌓고, 견고한 자신만의 힘을 가진다. 이들이 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위로하는 방법이 글쓰기라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의 뒷이야기가 궁금해 팬픽션을 쓰던 이, 남편을 죽이고 싶어 그 욕망을 잔혹한 묘사의 소설로 풀어내는 이, 짝사랑하는 이와 꿈꾸는 관계를 글로 풀어내는 이 등이 모인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은 각자 자신의 언어로 글 쓰는 법을 배우고 그제야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위로한다. 안나도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자신만이 ‘이상한’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좀 더 능숙하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체득하게 된다.
여기서 내가 개인적으로 주목한 인물은 로렐라이 언덕의 문학회를 이끄는 로렐라이이다. 이는 남성 배우가 여장을 하고 나오는 것으로 표현되는 인물인데, 과거 사랑한 로렐라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자신이라는 이유로 세상에서 지워지고 고통받는 것을 경험하고 자신이 그 이름과 뜻을 이어받아 가는 인물이다. 사연 많은 로렐라이 언덕 인물 중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경험한 인물이며 세상의 모든 차별적 시선과 억압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로렐라이 문학회 회원들을 북돋아주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자꾸만 눈이 갔다. 그렇게 외로운 투쟁을 벌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인물이라는 것이. 모든 경제적,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자신의 삶을 통해 직접 보여주려는 사람이라 마음이 갔다. 마치 안나가 그 시대 여성은 무조건 배우자를 찾아 결혼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신이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냐고, 자신의 삶으로 온몸으로 증명하였듯이.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인지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도나 배려가 온몸에 배어 있는 것이 대사와 지문으로 드러난다. 로렐라이 문학회에 안나를 찾기 위해 여장을 하고 몰래 숨어 들어온 브라운을 내쫓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점이라든지. 안나가 감옥에 갇히고 로렐라이 문학회가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르는,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 이상의 형벌이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안나에게 안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해주는 것이 너무나 인상 깊었고 따뜻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은 쉽게 변화하지 않고, 남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사회는 이들이 이 사회를 뒤집어버릴까 경계하여 레드북을 금지하려 애쓴다. 이를 위해 레드북 관계자들과 안나를 감옥에 가두고 재판을 통해 벌금과 추방형을 내리려 한다. 물론 재판관은 모두 남성이며 검사와 변호사도, 증인도 남성이다. 이들은 두려웠던 것이다. 여성들이라는 생각도 않던 개체들이 인간으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기득권을 쥐고 있는 이들은 생각도 않던 이들이 권리를 가지고 그것을 행사하는 것에 민감하다. 여성이라는 이유 만으로 참정권을 부여받지 못하던 것과 같이,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체제의 전복이며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작이 목소리를 내는 것, 즉 글을 쓰는 것이기에 이들을 금지한다.
안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설득과 아끼는 사람들의 상황 속에서도 가장 자신의 원하는 것을 찾아낸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모두를 위한 길이 됨을 알고 있기에.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힘든 시대에도 “티끌 없는 시대에 하나의 얼룩으로 남는” 삶을 기꺼이 자처한다. 그리고 이 기반이 되는 것은 안나를 통해, 레드북을 통해 변화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처음에 곱지 않은 눈으로 보던 사람들도 레드북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 글을 배우고, 또 다른 꿈을 꾼다. 그것이 안나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안나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경이 되어 준다. 재판장에서 안나를 구하는 것 역시 안나 자신의 이야기이며, 안나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게 된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이것은 비단 레드북의 배경이 되는 시대만이 아니라 현재 이 뮤지컬을 보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통용되는 이야기이다. 여전히 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말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고,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레드북을 보고 나면, 비단 나를 위로하는 방법으로서만이 아니라 이 사회와 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나를 믿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를 위로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큰 소리로 하면 할수록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지고 각자의 목소리가 공명하여 울려 퍼진다. 그렇게 세상이 시끄러워질수록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목소리에 힘을 얻고, 위안을 받고, 또 자신의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이 인상적인데, 수많은 이들이 안나와 같은 삶을 꿈꾸지만 그것과 별개로 제2의 누군가가 아니라 제1의 자신이 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제1의 나 들이 모여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어 보자고.
나 역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위안을 얻은 사람이다. 나는 힘이 들 때면 글쓰기를 통해, 그중에서도 내 이야기를 다듬어 에세이 형식의 글을 쓰는 것을 통해 무언가 해소됨을 느낀 적이 많았다. 그렇기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어떤 형태로든 글을 썼고, 이를 통해 무언가 내 안에 응어리졌던 것이 풀어짐을 느꼈다. 이렇게 나 혼자만의 속 시원함이 아니라, 내 이야기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또 이런 인생도 있고 이런 나도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을 레드북을 보면서 느꼈다.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그 솔직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소화하는걸 버거워하고, 더 정확히는 거기에 드는 에너지를 피곤해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하고 세상의 일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표준화된 틀에 자신을 맞추려 한다. 하지만 레드북에서 말하는 것은, 조금 모나고 들쭉날쭉해도 그것이 자신의 인생이며 그것을 사랑하는 제1의 존재가 자신이 되어주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말하라는 것, 그 목소리가 누군가에겐 메아리가 되고 이 세상을 울릴 것이라고 느껴졌다.
뮤지컬 레드북은 안나의 이야기이다. 아니, 사실 안나로 대변되는 그 시대 여성들의 이야기이며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극 중에서 말하듯이 레드북의 필자도 독자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들이 아니다. 우리 곁의 누군가이며,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이다. 그렇기에 레드북을 쓴 안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림을 얻는다.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며, 나를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사랑해줄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내가 되기를 오늘도 기대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세상을 좀 더 살만한, 목소리를 들어주는 세상으로 만들어줌을 기대한다. 내일의 우리를 기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