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저녁을 먹자고 했을 때 난 마냥 좋았어. 친구와의 약속이 파투 나서 밥 먹을 사람이 없을 뿐이라고 해도 나는 좋았어. 밥을 먹고 바로 다른 일정으로 가 봐야 한다고 해도 나는 좋았어. 네가 나와 같은 시간에 일정이 있다는 것이 좋았어. 너와 저녁을 먹는다는 자체가 좋았어.
너와 시간을 보내다 나란히 각자의 일정에 늦었을 때, 나는 일정에 늦어 속상한 것은 둘째 치고, 뛸 듯이 기뻤어. 너와 내가 시간을 공유하다가 다른 일정도 미뤄놓은 것만 같아서 기뻤어. 지각이라는 작은 것이라도 너와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겨서 행복했어.
너와 다툴 때도 난 좋았다? 네가 나와의 관계를 그저 치워버리면 될 관계가 아니라, 풀어야 할 관계로 본다는 것이 좋았어. 그래서, 서로 오해가 있어 다툴 때 정말 힘들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 너무 기쁜 거야.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때때로 메신저에 아무 답 없이, 네가 읽었다는 표시만 뜨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면 좋을까. 읽어주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걸까. 너의 무관심에 울어야 하는 걸까. 읽었다는 표시 하나에도 내 기분은 저 꼭대기에서 지하까지 (그래 네 표현을 빌리자면 지구 중심까지) 수직 하강해. 물론 너에게는 아무런 일도 아니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일들 중 하나겠지만. 너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고, 광고 문자를 보듯이 쓱 읽음 표시를 없애버릴 뿐이겠지만.
너는 모르겠지만 내 모든 글의 A는 너야. 불특정 한 무언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유일무이한 나의 첫 번째 글자. 그건 너를 위해 남겨둔 나의 마음속 첫 번째 공간.
나의 글은 항상 A, 너를 향해 있지만 절대 너에게는 읽히지 않겠지. 독자는 너로 상정되어 있지만 끝끝내 너에게만은 읽히지 못할,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