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떠들썩했던 유명 웹툰작가의 특수교사 고소 사건을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자폐 자녀를 둔 작가가 녹음기를 통해 아이의 학교 생활을 녹취한 뒤 담당 특수교사의 언행을 문제 삼아 그를 고소한 사건이다. 장애인에 대한 아동학대 혐의라는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기도 하고 해당 작가의 반응 또한 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난 까닭인지, 단순히 한 학교에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건은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게 되었고 언론/교육/정치권 등 다양한 채널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촉구하기도 했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떠나서, 나는 자폐 아동의 부모로서 왜 이 부부가 녹음기를 학교에 보냈는지 너무나 잘 이해한다. 대부분의 자폐인들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집 바깥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더라도 이를 부모에게 설명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아이에게 라면 "요새 무슨 일 있니?" 혹은 "학교 생활 어때?"라고 물으면 그만이겠지만, 자폐 아동의 부모들은 그저 아이의 조그만 신호 - 언어, 눈 맞춤, 태도 등등- 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요새 애가 왜 이러는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학교만 다녀오면 짜증이 심해지거나, 몸에 상처가 종종 보인다거나,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고 반항한다면? 자연스레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 말고는 아이를 도울 사람이 없다'는 절박함에 넘지 말아야 되는 선도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만 10세가 된 아들 태민이도 자기를 보호하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능력 (자기 옹호, Self-advocacy)이 매우 부족하다. 성격이 명랑하고 공격성이 없는 건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지만, 다른 아이들이 떠밀거나 자기 물건을 멋대로 들고 가도 저항하지 않고 그냥 피해버리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다른 아이들처럼 하지 말라고 빽 소리치거나 뺏긴걸 다시 뺏어오거나 하는 근성 (?)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내가 안 보는 곳에서도 똑같이 저렇게 당하고 집에 와선 그저 헤헤 웃고 있을걸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턱 막힌다. 매일 같이 학교에서 뭘 했는지 물어봐도 학교 생활은 "Good" 공부한 건 "Math" 아니면 "Reading"이니 학교에서 매일 보내주는 한 장짜리 report 말고는 7-8시간의 학교 생활을 파악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것이다.
이번 주 초부터 온 가족이 감기에 걸려 골골대고 있다. 와이프는 몸살과 열로, 아이와 나는 콧물과 기침으로 고생 중인데, 특히 태민이는 줄줄 대는 콧물 때문에 코 주변이 빨갛게 헐어버렸다. 빨개진 아이의 코를 훔쳐주며 "아들 코가 루돌프가 다 되었네"라는 아내의 말에 난 별생각 없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 태민이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그 노래를 들은 아이의 반항적인 눈빛을 난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NO!! Let's STOP singing!
크게 외치고 자기 방으로 사라져 버린 아이의 뒷모습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아이를 10년간 키우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자기 옹호 발언. 와이프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본 후에야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급하게 아이 방으로 향했다.
"태민아, 혹시 아빠가 놀려서 화났어?"
"Yes!"
오 맙소사. 너도 이게 되는구나. 싫은 걸 싫다고 할 능력이 생겼구나.
화난 아이를 달래면서도 절로 입가를 비집고 나오는 미소를 감추기가 어려웠다. 고맙다 태민아. 부디 내년에도 올해처럼 많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