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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Sep 28. 2024

외국 사는 형이 차마 못하는 말

몇 달 전, 통화하다가 어머니가 조심스레 꺼내신 말이 있다. 나중에 본인이 가시고 나면 조금이라도 돈이 남을 텐데 그걸 나눌 때 동생을 조금 더 신경 써 주면 좋겠다는 이야기. 혹여 내 마음이 상할까 조심스러워하시는 어투가 전화로도 느껴졌기에 기분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벼룩도 낯짝이 있지, 외국 나와 살면서 일 년에 한 번 찾아뵙기도 힘들어하는 아들이 이런 주제가 나올 때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내가 미국에 유학을 나와 공부하고 정착하려 고군분투하는 몇 년 동안 동생은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집도 마련했지만, 이에 대해 부모님에게 불평한 기억도 없다. 내가 못하는 효도까지 동생이 할 테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뵙고 도움을 드려야 할 테니 나보다 더 챙겨 받는 게 인지상정이라 생각했으니까. 아들 태민이가 열한살이 되기까지 동생에게 아이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음에도 동생 생일마다 용돈을 보내고 귀국할 때 조카들 선물을 사 가는 것도 늘 내 몫이다. 


지난 주말, 추석 안부인사 겸 어머니와 통화하다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언짢음에 무슨 일이 있었나 물었더니 동생네 가족이 추석에 빈손으로 들러서 식사만 하고 갔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철없는 20대도 아니고, 벌여놓은 여러 일들에서 수입도 적지는 않은 상황인데 왜 그런 걸까. 과일 한 상자나 돈 몇만 원이라도 들고 갔으면 절대 이런 반응을 보이시진 않을 터이다. 물론 갓난쟁이들을 챙겨서 찾아뵌 것만으로도 고생이 어마무시한 건 잘 알지만, 이런 일이 사실 한 두 번도 아니고, 과연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이 녀석이 나 대신 아버지 어머니를 잘 챙길 거라고 마음 놓을 수 있을까...?


알고 있다. 외국에 나가 있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는 걸. 내가 한국에 있을 때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지 못했던 걸 생각해 보면, 동생이 나처럼 부모님을 애달파하지 않고 나처럼 용돈이나 선물을 챙기지 않는다고 이렇게 언짢아하는 건 불공평한 일이리라. 이제 부모님 두 분 모두 칠순을 넘어 앞으로 찾아뵐 기회가 몇 번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무슨 일이 있을 때 돕기는커녕 먼 곳에서 마음 졸여야 하는 이 상황이 그저 원통할 뿐.   


아마 올 겨울에 다시 만나도 그저 돈봉투나 안겨 주면서 "시간 내서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맛있는 거 자주 먹어"라고 웃어주는 게 다겠지. 아마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는 오지 않으리라. 


제발 좀, 할 수 있을 때 잘해라.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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