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나른하게 주말을 기다리던 중 미국 취업 비자 (H-1B) 신청자에게 10만 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겠다는 뉴스가 눈에 띄었다.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아, 이제 미국 취업 이민은 끝이구나.”
나도 수년간 고생하며 간신히 영주권을 받았기에, 영주권을 기다리면서 거의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취업 비자 (H-1B)가 얼마나 절실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만약 H-1B가 사라지거나 실질적으로 접근이 막힌다면 어린 나이에 이민 => 대학 => H-1B => 영주권 => 시민권으로 이어지던 전통적인 이민 경로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취업 비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미국 행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가는 것이, 그동안 H-1B 취업비자를 남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MBA를 마치고 취업한 2019년에 H-1B 로터리 (신청한다고 다 주는 게 아니라 추첨을 통과해야 한다) 등록 수수료가 기존의 4천 달러에서 고작 10달러로 낮아졌고, 이걸 기회로 인도계 스태핑 회사들은 본국에서 수천수만 명분의 이력서를 가져와 로터리에 쏟아부었다. 실패하면 10불을 날리면 그만이고, 추첨이 되면 그 사람을 서부의 테크 회사와 연결해 주고 수만 불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으니까. 그 결과 이전엔 2~3:1 정도였던 H-1B의 추첨 경쟁률은 요샌 7~10:1도 우습다고 한다. 심지어 이학/공학/의학 전공자처럼 세 번의 추첨 기회를 가져서 이전엔 거의 모두 비자를 받았던 대상도 요즘은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다.
기업 입장에서 비자나 영주권은 '울며 겨자 먹기'다. 이공계 인재가 미국 내부에서 수급이 어렵다는 건 수십 년간 진행형인 문제이기에 그동안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취업비자와 영주권을 지원하며 외국 출신의 인재를 유치해 왔다. 또한 비자 소지자의 경우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약점이 있기에 같은 수준의 미국인보다 저렴한 임금으로 장기간 고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하지만 이 사람을 고용하기 위해 10만 달러를 정부에 내라고? AI 산업처럼 인재 쟁탈전이 극심한 소수 분야면 모를까, 대부분의 기업들은 외국인 고용에서 손을 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 대학 시스템은 이미 유학생들의 등록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졸업 후 취업과 미국 정착이 불투명하다면, 과연 누가 수십만 달러를 들여 자녀를 유학 보낼까? 세계의 중심에서 활약할 내 아이를 기대하며 수년간 큰돈을 들여 미국 유수의 대학을 졸업시켰는데 10만불 고용 수수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졸업하자마자 돌아온다고 상상해 보라. 유학생 감소는 곧 학교 숫자 감소 및 교수직 감소로 이어지고, 중하위권 대학부터 점차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이민자가 빠져나가면 당장은 미국인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자리를 채우고 제대로 역할을 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이민자들끼리 속내를 털어놓는 이야기를 할 때 늘 나오는 이슈가 미국 현지 근로자들의 실력 및 업무태도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고숙련 이민자들 없이는 장기적으로 산업 전반적으로 생산성과 혁신이 유지되기 쉽지 않다고 본다.
정책은 숫자와 규정으로 움직이지만, 그 뒤엔 사람의 인생이 있고, 그 인생들이 모여 하나의 시대를 만든다. H-1B에 부과된 10만 달러는 단순한 수수료가 아니라, 교육과 산업, 이민이라는 흐름 전체를 겨냥한 신호다. 문제는 이런 신호가 가져올 파장이 수개월이 아니라 수년, 아니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민이라는 동력 위에 세워진 나라가 그 동력을 꺼뜨릴 때, 그 결과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과연 미국은 이 정책이 불러올 나비효과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