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DMV 야구리그는 한 번 강제로 멈췄다가, 뒤로 감고 다시 재생 버튼을 눌러야 했다. 부정 선수(선출 제한 위반) 사건으로 리그 운영진은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의 해당 선수 출전 경기를 전부 무효화했고, 해당 팀을 제외하고 3–4위전부터 토너먼트를 다시 시작했다. 원래라면 10월 말에 모든 게 끝났을 일정이지만 이로 인해 미뤄진 결승전 날짜는 11월 23일. 버지니아의 11월 말은 강한 바람과 섭씨 0-10도의 낮은 기온에 4시만 넘어도 해가 기울기에 야구를 하기에 굉장히 좋지 않은 조건이다. 전 세계 프로 야구리그들도 10월 말-11월 초에 일정을 종료하는데 아마추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다행히 결승 당일은 초겨울 치고 포근한 섭씨 15도 안팎이었기에 (그래도 야구하기엔 춥다..) 양 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의 새로운 결승전 상대는 신생팀 Dinos. 주축이 20대 중후반이라 젊고, 시즌 내내 연습량이 남달랐기에 시즌 초반과 후반의 전력이 다른 팀처럼 느껴질 만큼 성장한 팀이다. 경기 초반 연속 안타와 상대의 에러로 11–4까지 앞서서 '오늘은 무난히 가겠다' 싶었는데, 젊음은 쉽게 기죽지 않았다. 5회 초 2아웃에서 6점을 몰아내 끝내 12–12 동점을 만드는 근성에는 감탄`할 수밖에.
하지만 여기가 경험이 차이를 만드는 구간이다. 플레이오프와 결승을 여러 번 겪으며 다양한 경험을 해본 우리 팀의 저력이 여기서 나왔다. 아마 이게 첫 결승전이었다면 허탈하고 조급한 마음에 스스로 경기를 망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산전 수전 다 겪을 우리는 끝끝내 역전만은 허용하지 않았고, 마지막 5회 말 공격에서 3점을 추가하며 결국 3년 연속 우승, 이른바 3-PEAT을 만들어냈다 (Three + repeat). 한 시즌 우승도 쉽지 않은데, 팀 멤버들의 은퇴 및 타 주 이사가 잦은 미국 한인 사회의 특성상 3년간 전력을 유지하며 내리 정점에 선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장비와 연습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감독의 투자, 팀원들의 열정과 실력이 균형을 이루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야구를 시작한 이래 2025년만큼 힘든 해가 또 있었을까. 어제 하루만 놓고 보면 1안타 2볼넷으로 밥값을 했지만, 시즌 전체를 놓고 보면 이렇게까지 팀에 기여를 못한 건 처음이었다. 1월부터 시작된 좌측 허리 통증은 낫기는커녕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야구를 떠나 일상에까지 영향을 주었고, 시즌 초반 구속을 높이려고 바꾼 투구 폼은 팔꿈치 안쪽 인대를 다치게 했다. 인대는 스스로 회복이 어려운 부위라 들었는데, 아마 투구는 당분간 (혹은 영영) 접어야 할지 모른다.
백번 양보해 투수는 안 하면 그만이라지만 문제는 타격이었다. 허리에 통증과 불편감이 있으니 내 스윙이 나오지 않았고 자존심이던 타격에서 죽을 쑤는 일이 반복됐다. 눈으로 공을 따라가고 타이밍도 맞아 이전이면 외야를 넘어갈 공이 밀려 파울이 되거나 힘없는 땅볼로 굴러가곤 하니, 자존심이 상하는 걸 넘어 자신감이 무너졌고 야구 자체에 대한 흥미도 서서히 식어갔다. 이전의 커리어 로우였던 2024년과 비교해 봐도 타율과 출루율은 비슷한데 장타율만 2할이 넘게 하락했으니... 타격 생산성의 척도인 OPS (출루율+장타율)가 올 시즌 고작 1.1인걸 보며 '이게 대체 무슨 숫자인가' 지금도 얼떨떨하기만 하다. 통산 OPS가 1.5를 넘는걸 생각하면 (이마저도 2024, 2025 두 시즌을 말아먹어 떨어진 숫자다!!) 더더욱 지금의 기록에 자괴감이 든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니다 싶을 때 차라리 두 달쯤 쉬고 회복했어야 했다. 그런데 '강도만 조금 낮추자' 하고 테니스와 야구를 계속하다 보니 결국 내 몸이 버티지 못한 거겠지. 30대 중반부터 느려지기 시작한 회복속도는 40을 찍으며 결국 나에게 장기체납 고지서를 들이밀었다.
내년에도 야구를 계속하게 될까? 아직 모르겠다. 만약 한다고 해도 다 나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다. 예전엔 '어떻게 해야 야구 실력이 늘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지키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쉽지만, 이 또한 경험이 내게 주는 다음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