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고작 50명 남짓한 서울대 04학번 경영 A반 동기들 중 벌써 두 명이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암으로, 다른 한 명은 심장마비로. 가끔 가슴이 찌르듯 아플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아직 떠나기엔 너무 이른 나이에 가족을 남겨두고 가야 했던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전혀 예상도 대비도 못한 죽음은 본인에게도 남은 사람들에게도 크나큰 충격이었으리라.
만약 내 차례가 온다면? 인생의 큰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버킷 리스트가 해보고 싶은 일로 꽉 찬 것도 아니니 ‘좀 아쉽네.. 아내가 태민이 혼자 키우느라 힘들 텐데 어쩌지?’ 정도의 마음상태일 것 같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남겨질 사람들이다. 내가 사라진 뒤에도 가족의 일상이, 특히 아내와 태민이의 일상이 가능한 한 그대로 굴러가야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한 준비는 살아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ICE (얼음도 아니고, 요즘 미국에서 악명 높은 이민 단속 기관도 아니다) 문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In Case of Emergency, 내가 가진 자산과 부채, 구독 중인 서비스, 연락해야 할 사람들, 중요한 문서가 어디 있는지. 내가 없을 때 누군가가 (아마도 아내가) 바로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단순하고 명확하게.
특별히 아픈 곳이 있는 것도 이상한 예감이 드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새해 벽두부터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이나 미국의 UN 탈퇴 등의 놀라운 뉴스들을 듣다 보니 세상이 언제든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설령 내가 예상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다 하더라도 이 문서를 통해 아내와 태민이의 일상이 큰 영향 없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바라건대, 이 문서가 최소한 30-40년간은 필요 없기를)
이번 달까지 ICE 문서를 완성하고 매년 1월에 업데이트해야지. 우울하기보단 보람찰 것이다. 이건 죽음을 되새기는 루틴이 아닌 우리 가족을 지키는 동아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