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디씨 근교에 살다 보니 출장이나 파견으로 오는 지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그중에서 자폐 아이를 키우는 동지(?)들을 만나면 유독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쪽이 무거워진다. 서로의 사정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니까.
몇 년 전 와이프 친구 부부가 대학원 과정으로 미국에 왔다. 서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보니 우리 부부가 미국 정착을 결심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기에 더 반가웠다. 이 부부의 아이는 수업에 집중을 못했다고 하는데, 분명 똑똑한 아이가 교실에서 자꾸 장난치거나 밖으로 나가버리니 선생님은 아이가 일부러 이런다고 판단하여 아이에게 엄하게 대했고 결국 부모는 학교와 소송 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반면 미국 학교에서는 달랐다. 아이는 우등반에 들어갔고 학교 생활도 아주 즐거웠다고 한다. 같은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이의 미국 생활을 본 아이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 회사의 오퍼를 붙들고 고민했지만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한국에서 쌓아온 것들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몇 년 전 나도 같은 자리에 서 있었으니까.
그 아이는 올해 중학교에 들어갔고, 학교 생활은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전 직장 선배가 이 지역으로 파견을 나왔다. 부부 모두 선하고 아이 또한 착하고 똑똑하여 자주 왕래하게 되었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과학기술이나 SF 소설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초롱초롱 빛나면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으려고 했다. 다만 그 열정과 집중력이 너무 넘치다 보니 사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교우관계가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아이의 진짜 이슈는 본인이 '뭔가 다르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며칠 전 주말에 아이를 만났을 때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보다 차분하고 말수도 줄었으며, 뭔가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집에 와서 와이프에게 말했다.
"애가 많이 변했더라. 좀 나아진 건가? 이젠 모르는 사람은 자폐 있다는 거 모르겠던데"
와이프는 잠깐 생각하더니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masking 하는 거야."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는지 덧붙였다. 자기 본모습을 억지로 가리고 있는 거라고. 나아진 게 아니라 숨는 법을 배운 거라고.
마음 한구석이 얼얼해졌다.
두 아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 명은 돌아갔고, 한 명은 곧 돌아갈 것이다.
미국에서 우등반에 들어갔던 아이, 눈이 빛나던 아이. 그 아이들이 돌아가서 만날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날 밤 집에 들어오다 태민이 방문 앞을 지나쳤다. 아직은 숨지 않아도 되는 아이.
과연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너와 함께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