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cation을 사러 떠난 주말여행

New River Gorge National Park 여행기

by Sol Kim

일주일이 넘는 봄방학, 아이패드와 한 몸이 되어 보내던 아이가 문득 말을 꺼냈다.

"Vacation 사줘!"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될지 모르겠는 이 정체 및 국적 불명의 문장이라니. 뭘 사달라고?


하긴 태민이에게는 방학 때 집에만 있는 게 이상했을 수 있겠다. 방학 때면 어디든 놀러 갔는데 이번 봄방학에는 집에만 있었으니까. 한 주 내내 재택근무하며 애를 보는 나도 리프레시가 필요한 건 매한가지였고, 결국 언젠간 가봐야지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었던 곳, 4시간 반 거리의 New River Gorge 국립공원으로 짧은 주말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New River Gorge National Park는 West Virginia 주에 위치한 곳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10년도 되지 않은 데다 접근성도 좋지 않은 탓에 한국인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에게조차 생소한 곳이다. West Virginia 자체가 20세기 초중반 석탄 및 철강산업의 쇠락과 운명을 같이 한 지역이기도 하고, 애초에 국립공원 지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 및 관광객 유치를 위한 목적이 꽤나 컸다고 할 정도. 우리도 워싱턴 DC 근처에 살아서 가까운 곳이니 갔지 아마 서부지역에 살았으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역시 국립공원은 국립공원인 이유가 있다. 거친 물결이 흐르는 New River를 중심으로 깊은 협곡, 철도와 탄광의 흔적이 잘 어우러진 다양한 절경 뿐 아니라 트레일, 암벽등반, 래프팅, 캠핑 등 다양한 액티비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아치형 다리 중 하나이자 West Virginia의 상징인 New River Gorge Bridge 또한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중간중간 쉬어가며 약 5시간 운전해서 숙소가 있는 Beckley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구글 평점이 5점 만점에 3.5에 불과한 데다 안 좋은 리뷰도 좀 있어서 살짝 긴장했는데, 방도 깨끗했고 빵/요구르트/사과/커피 정도의 기본적인 조식도 제공해서 기대보다는 꽤나 괜찮았다. 다만 역시 저가 호텔이다 싶은 이벤트도 있었는데, 화장실에 로션과 컨디셔너는 비치되어 있는데 샴푸가 없었다는 점.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정은 자연스럽게 샴푸 쇼핑으로 시작해야 했다. 놀랍게도 이 웨스트 버지니아의 마트에서조차 한국산 컵라면이 들어오고 있는 걸 발견. 장하다 K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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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첫 코스는 '귀신 마을'로 알려진 Thurmond에서 시작했다. 1900년대 초반까지는 석탄 산업으로 엄청나게 번성했던 곳이라고 한다. 기차는 여전히 다니지만 지금은 역 주변 선로, 오래된 건물들, 텅 빈 거리 모두 시간이 멈춘 느낌. 100년 전에서 반 걸음만 나온 느낌이랄까... 하지만 아이도 철길과 기차를 보며 꽤 신나 했고, 우리 부부도 오래된 마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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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mond Point로 유명한 Endless Wall Trail. 아침 일찍부터 꽉 찬 주차장에 간신히 차를 대고 올라갔다. 트레일 자체는 평범했지만 Diamond Point에 발을 디딘 순간 발아래로 흐르는 강과 협곡의 조화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진으로 잘 표현되지 않음이 아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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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산책을 마치고 차로 조금만 가면 Fayette Station Road로 진입하는 입구가 나온다. 아침에 픽업해 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으며 천천히 8마일의 드라이브를 즐긴다. 약 40여분 걸리는 이 길은 지금은 관광용 도로이지만 아래 사진의 New River Gorge Bridge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실제 통행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다리의 건설로 인해 기존의 40분 운전이 1분으로 줄었다고.


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New River Gorge Bridge를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는 각도가 나오는데, 그게 또 꽤 인상적이다. 산과 협곡 사이에 의지로 길을 놓은 인간이 놀라울 따름. 장장 1k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아치형 다리 중 하나라고 하는데 공사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이 들어갔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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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나니 슬슬 전날 밤에 오래 달린 피로가 몰려온다. 30분쯤 달려 전망대와 트램으로 유명한 Hawks Nest State Park에 도착했지만 역시 와이프도 아이도 별로 의지가 없어 트램은 패스. 여행은 역시 체력이 반이다. 잠깐 전망대에서 머문 뒤 근처의 Cathedral Falls로 향했는데, 약 20미터 높이에서 쏟아지는 폭포가 꽤나 시원하다. 아이도 신발을 벗고 뛰어들어 한낮의 더위를 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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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에 육박하는 오후의 날씨에 체력적 부담까지 겹쳐 Long Point Trail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전망대에 도착해서 멀리 New River Gorge Bridge가 보이는 순간 모든 피로가 날아가는 느낌. 잠시 꼭대기에 앉아 시원한 산들바람을 즐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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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 날 오전은 계속 비가 내렸다. 원래는 유명한 Grandview Rim Trail을 걸으며 여행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 빗줄기가 가늘지 않냐며 아들과 와이프를 슬쩍 꼬셔봤지만 둘 다 단호하게 거부한다. 아쉽긴 했지만 Visitor Center에서 본 New River의 모습만으로도 방문한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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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River Gorge 국립공원은 여타 미국 내 유명 국립공원처럼 화려하거나 웅장한 여행지는 아니다. 잘 발달된 관광지가 아니니 편의시설도 충분하지 않으며, 거점 마을들 또한 반짝이기보다 투박하고 느린 시간 속에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더 좋았다. 늘 가던 익숙한 풍경이 아닌 조금 더 거칠고 오래된 미국의 또 다른 얼굴 같았던 곳.


아들의 Vacation을 사주러 떠난 여행.

짧은 여행이었지만, 기억은 짧지 않게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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