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부림
결론을 말하자면
층간소음으로 우리집의 아랫집 사람들이 찾아왔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격해진 아랫집 아저씨는
식칼을 들고 올라오셨다.
"죽일수 있어!" 라는 말과 함께.
남편은 곧장 경찰에 신고를 했고, 그 아저씨는 체포되었으며.
형사님들이 바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보통은 기각될 확률이 크다고 해서 형사님들은 신변보호 요청 하라고 알려주었다.
사건 당일 남편은 새벽 1시까지 조서를 쓰고 왔고,
다음날 나와 아이들의 신변보호 신청과 개인정보 활용 동의서 싸인을 하고 스마트워치를 받아왔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구속영장은 발부 되었고 아저씨는 구치소로 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 스마트워치를 반납해달라는 말과 함께.
그 날부터였나..
아랫집 사람들의 연락이 시작되었다.
심지어 딩동-인터폰을 누르고 집앞에 찾아오기 까지했다.
합의해달라며.
우리 식구는 이사를 가야하는지 어떤 액션을 취해야하는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 빨리 구속이 되다니...
형사님은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게 당연하다고 말해주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차에가서 엉엉 울었다.
왜냐하면 또 이 모든게 내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연민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랫집에서 층간소음 민원 넣는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조심할게요.
한 마디를 듣고자 올라온 사람들인데 늘상 민원을 받다보니 우리로써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층간소음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나한테 조심 좀 하지 그랬어 라고 말한다.
또는 주변 세대에서 시끄러운건데 덤탱이 쓴거 아니냐고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아랫집 아줌마는 많이 예민하다.
심지어 1년 전에는 내가 외출한 사이,
아이들만 집에 있었는데 아랫집 아주머니가 올라오신 적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집에 안계신다고 말했는데도
아주머니는 엄마 좀 기다리겠다며 맘대로 거실로 들어와서는
쇼파에 10분(아줌마피셜) 앉아있다 가셨다.
그 10분동안 아주머닌 우리집 안방 안쪽에 위치한 드레스룸 안쪽에 숨은 실외기실까지 침입했다.
거기에 곰팡이가 폈는지 안폈는지 궁금했다며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가셨고,
나는 아직도 한번씩 생각날 때면 자다가도 소름돋아서 깨곤 한다.
당시 아파트 소장님은 "저라면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라고 하셨는데,
아파트에서 봉사를 하고 있던 나는 좋은게 좋은거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넘어갔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층간소음 민원이 올 때마다 죄송합니다. 라고 낮은 자세로 죄인같이 지내던 모습을 싹 지워버렸다.
그래서 죄인처럼 굴기 보다는 조금 더 자신있게.
"아이들이 있다보니 조심한다고 해도 소음이 발생하네요. 양해부탁드립니다." 라고 말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10대 초등학생들이다.
집에서 뛸 일이 없다.
심지어 나는 외출할 때 아이들만 있는 집에서 늘 두려워서 "아무도 문 열어주지마" 라는 말을 늘 한다.
10대인 아이들에게 (-_-)
그리고도 걱정되서
큰애는 컴퓨터 게임하라고 비밀번호를 풀어주고,
작은 아이에게는 tv로 유투브를 허락한다.
그럼 3시간일지 4시간일지 모르는 나의 외출시간 동안
아이들은 꼼짝앉고 게임과 유투브만 본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엄마 천천히 와도 되~ 늦게 와~" 라고 할 정도로 아이들은 몰입한다.
그런데 우리집에 무단침입했던 그 날, 아랫집 아줌마가 찾아온 이유는
"집 천장이 무너질것 같아서 찾아갔었어요" 였다.
너무 예민한거 아냐?
그 때 진작 피했어야 했을 똥이었다.
결국 그 때로부터 1년이 조금 넘은 후인
근래에들어 아랫집 아저씨는 칼을 들고 찾아오셨다.
"이래서 칼부름이 나는거야. 못 죽일거 같아?c8 다 죽일수 있어! 죽여버릴거야!"
너무 놀라서 잘 기억도 안한다. 순서도. 말도.
단지 반짝이는 식칼만 오버랩되어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신고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과 소방관분들이 협업하여 열댓명이 방문하셨다.
남편이 상황설명을 했고,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아 울기 시작했다.
"오빠 나는... 이런 상황이 생길까봐 죄송합니다 라고 했던거야. 사과하면 그들도 일단 진정하고 돌아간단말이야. 괜히 상대해서 이 사태가 벌어졌으니.. 이제 불안해서 우리 애들 어떡해....."
"자꾸 저 자세로 나가니까 더 저러는거야. 한번은 터질 일이었어. 아무리 그렇다고 칼 들고 올라오는게 정상적인 사람이 할 짓이야?"
똘똘 뭉쳐 서로를 위로해도 모자를 판에 우리 부부는 팀킬을 시전했다.
그때부터였다.
다 풀은 줄 알았던 나의 트라우마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고, 나는 불안증에 과호흡이 오기 시작했다.
손발이 저리고 눈물이 자꾸 터져나왔다.
심장이 눈앞에 튀어나올 것 처럼 쿵쾅되고 숨이 턱턱 막혀서 답답했다.
친동생이 운동가자며 나를 불러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지만 나는 곧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
지하주차장에 주저앉아 몇 분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알수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나는 혼자 그렇게 울었다.
청심환을 매일매일 먹었다.
내가 먹은 청심환은 환으로 2개, 병으로 4병.
매일매일 먹었더니 한의학을 전공한 제부가 남편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왔다.
청심환도 지속적으로 먹으면 더 불안증이 생길 수 있고, 안좋으니까 차라리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는게 어떻겠냐고.
남편도 걱정을 하기에 나는 집근처 신경정신과 두 곳을 찾아갔는데 퇴짜맞았다.
"예약진료만 합니다."
"아.. 빠른 예약날짜가 언젠가요?"
"초진은 안받아요. 초진은 다음 달부터 가능하신데 예약해드려요?"
"수고하세요..."
병원을 빠져나와 길가에 섰다.
으리으리한 빌딩들 유리창에는 다닥다닥, 신경정신과가 4군데나 있었지만
내가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 한 곳이 없었다.
인터넷에 신경정신과를 검색해서 다 전화를 걸었다. 길 한복판에 서서.
다행히 빠른날짜로 4일 후 예약 가능한 곳이 있다고 하여 예약을 했다.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