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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ap Feb 26. 2019

고스트버스터즈

"누구를 위한 귀신사냥인가."

"누구를 위한 귀신사냥인가."


80년대에 세상에 나온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의 주인공은 네 명의 남자 너드(nerd)였다. 그 중 세 명은 과학자, 한 명은 흑인 남성으로 올 해 새롭게 태어난 여성 '고스트 버스터즈'와는 등장인물의 성별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새롭게 태어난 '고스트 버스터즈'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 그것도 '물리학자'인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아 마땅하다. 영화 속에서도 물리학과는 남초 환경이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교수들 중 유일한 여자로 종신교수직 심사를 앞둔 에린은 여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오래 시간을 고생했다고 스스로 얘기한다. 에비 역시 마찬가지다. 에린, 에비, 홀츠먼이 함께 에비가 소속되어있던 학교의 학장에게 찾아갔을 때 그의 태도를 보면 당신같은 '여자들이' 뭘 하겠다는 거냐는 듯한 세상의 시선을 볼 수 있다.

네 명의 여성들 중 단연 눈에 띄는 캐릭터는 홀츠먼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미쳤다고 얘기한다. 영화에서는 소립자물리학자로 나오며, 온갖 이론을 읊어대고 귀신을 잡기 위한 무기를 전부 개발한다. 그녀는 행동, 말투, 표정이 좀 특이한데, 이 특이함이 매력으로 보인다.

그녀는 악당으로 나오는 로완과 다르다. 로완은 타인이 자신을 특이하다고 여기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자신이 왜 인정받지 못하고 특이하다고 여겨지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남과 다른 이를 차별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실, 특이한 것은 특이한 것이다.

일반적이라는 것은 대다수가 그렇다는 것이다. 99%의 사람들과  비슷해보이지 않는 것은 특이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특이하다는 게 나쁘거나 안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느낀다면 로완처럼 될 것이다. 그는 스스로 고정관념의 피해자가 됐다.

그리고 홀츠먼이 매력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녀는 자신의 특이함을 즐기고, 좋아한다. 아니, 자랑스러워 한다. 과학자까지 갈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공대생만 봐도 '너드(nerd)' '넛(nut)' '긱(geek)'이라는 단어를 쉽게 떠올린다. 홀츠먼은 이 단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표현을 그녀는 사랑한다. 자신이 너드고 긱이라서,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좋고 ('유령'을 잡기 위해)필요하니까 한다. (고스트 버스터즈의 로고를 보라. 그녀는 백치미남 케빈보다도 감각있다!)

분명 이 정도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영화가 세상에 나왔다는 것만으로 영화도 이 세상도 충분히 박수 받아 마땅하다. 거기에 더해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성 '과학자'들의 얘기만이 아니다. 고스트 버스터즈의 네 번째 멤버 패티가 있다. 패티는 그녀는 논픽션을 즐겨 읽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뉴욕 시의 역사, 특히 건물에 얽힌 역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이다.

이런 패티를 영화는 너무 배려하지 않았다. 영화 속의 패티만 말하는 게 아니라, 영화관에 앉아 있는 패티들까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영화는 너무나도 '여성 과학기술인'을 위한 영화였다.

이공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꼭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이들이 영화에서 하는 대화를 웃으며 들을 수 있었을 거다. 전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대화'를 듣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전체 인구를 놓고 본다면 다수일 거다)은 이들의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지쳐버리게 된다. 원자로가 어쩌고 플라즈마가 어쩌고. 가장 심하다고 생각했던 건 유령이 끈적거리는 액체를 뱉어내자 '엑토플라즘'이라고 말만 하고, 그에 대해 아무 설명도 없었던 거다.(심지어 이건 매우 초반부,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나온 장면이었다.)

군데군데 개그 요소가 많았지만, 그보다 쏟아지는 '과학적인 대화'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거 너무 어렵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내가 본 이 영화의 줄거리는, 네 명의 여성 과학자 집단이 세상이 인정해주지도 않고 고되기만 한 일을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해나간다. 그리고 그 일은 나쁜 목적을 가진 악령들을 퇴치해서 사람들을 구해주는 거다. 이거다. 그런데, 이 간단한 스토리가 쏟아지는 전문용어들에 파묻혀버렸다. 홀츠먼의 어이없고 익살맞은 춤, 표정, 그 모든 연기도 대사 속에 쏟아지는 전문용어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영화 속의 패티 역시 다른 세 명의 멤버들이 하는 대화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을 거다. 그냥 받아들였을 뿐.

이렇게까지 했어야 한 걸까? 씁쓸하지만, 아마 그랬을 거다. 왜냐면, 주인공이 여자 과학자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대놓고 사기라는 소리를 듣는다. '우울하고 외로운 여성들이 벌인 소동'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아마도 이 영화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조차 이런 생각을 하리라 여겼던 모양이다. 진짜 이들이 과학자가 맞다고. 초반에 에비의 연구실에 있던 텔레비전에서 나온 것 같은 '초자연 현상(paranormal)'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면. 무엇보다도 관객들에게 이걸 이해시키려면 이렇게까지 했어야 할 거다.

다른 공상과학 영화에서 어떤 '용어'가 등장하면, 그 용어가 설명하는 것이 중심 사건과 연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 속 등장인물 뿐 아니라 관객들 모두 그 용어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게 아니었다. 이건 공상과학 영화인데, 자신을 비(非)공상과학 영화(science-non-fiction)로 착각한 모양이다. '여성 과학자'인 주인공들을 방어하느라 말이다. 안타깝다


201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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