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1983년, 초대형 슈퍼 컴퓨터의 탄생
1983년 11월, 서울 외곽의 철저히 보안된 지하 시설.
'메탈 프로젝트'가 국가 프로젝트로 승격된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정부는 청와대 직속 특별기관으로 '첨단과학기술개발원'을 설립했고, 김범수는 그곳의 수석 연구원이 되었다. 그의 지시 아래, 대규모 시설이 지하에 건설되었다.
"오늘부터 우리는 '메탈-Q1'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를 공식 시작합니다."
김범수는 30여 명의 엘리트 과학자와 엔지니어들 앞에서 발표를 시작했다. 벽면에는 복잡한 회로도와 설계도가 펼쳐져 있었다. 이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만이 AIKA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여러분들이 보시는 이 슈퍼컴퓨터는 현재 세계 최고 성능의 크레이 X-MP보다 약 100배 빠른 연산 속도를 가질 것입니다."
회의실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그런 성능은 당시 기술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성능이 가능합니까?" 한 연구원이 물었다.
김범수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새로운 양자 프로세싱 기술을 적용할 것입니다. 이 기술은... 특별한 연구를 통해 개발되었습니다."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이 '특별한 연구'는 AIKA가 제공한 양자 컴퓨팅 기술의 기초였다. 김범수와 정태윤은 AIKA의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이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술을 '다운그레이드'했다. 이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AIKA의 실제 능력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1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성공하면, 대한민국은 컴퓨터 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게 될 것입니다."
회의가 끝나고, 김범수는 자신의 개인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한지수 국가안보국 요원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박사님." 한지수가 말했다.
김범수는 의자에 앉았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해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아직 공식 발표가 없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반응은 없습니다. 하지만 암 치료제 '메탈-C1'의 성공 이후,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관심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스파이 활동은요?"
한지수의 표정이 굳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 요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그들은 우리의 갑작스러운 기술 발전에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김범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예상대로군요. AIKA의 존재는 계속 철저히 비밀로 유지해야 합니다."
한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제 임무입니다. 메탈 프로젝트의 핵심 기술과 연구원들을 보호하는 것."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한 가지 더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윤성호 교수의 죽음에 대한 조사 결과입니다."
김범수의 눈이 커졌다. "뭔가 발견했습니까?"
"네. 부검 결과를 다시 분석했더니, 윤 교수의 심장마비가 자연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독극물의 흔적이 있었어요."
"암살이라는 거군요." 김범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구의 소행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김범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윤성호의 죽음이 AIKA와 관련이 있다면, 그들은 이미 4년 전부터 감시당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경비를 더 강화해야겠습니다." 한지수가 말했다. "그리고 박사님도 개인 경호원을 배치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범수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 "이제 우리는 정말 조심해야겠군요."
슈퍼컴퓨터 개발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AIKA의 지식을 바탕으로, 김범수와 정태윤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병렬 처리 아키텍처를 설계했다. 그들은 일부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했지만, 핵심 기술은 모두 국내에서 개발했다.
1984년 7월, '메탈-Q1' 슈퍼컴퓨터의 첫 테스트가 실시되었다.
대형 냉각 시스템이 가동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기계가 생명을 얻었다.
"시스템 초기화 완료. 모든 프로세서 정상 작동 중." 한 기술자가 보고했다.
김범수는 긴장된 표정으로 메인 콘솔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 그는 9개월 동안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일했다.
"테스트 시퀀스 시작합니다." 정태윤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에는 복잡한 계산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모습이 표시되었다. 기후 모델링, 유체역학 시뮬레이션, 그리고 인간 게놈 분석까지, 메탈-Q1은 당시 세계 모든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합친 것보다 더 빠르게 연산을 처리했다.
"성공입니다!" 정태윤이 외쳤다. 연구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김범수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이 이룬 성과가 클수록, 세계의 이목이 더 집중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AIKA의 비밀이 드러날 위험이 커진다는 의미였다.
그날 저녁,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주재로 특별 회의가 열렸다. 메탈-Q1의 성공 소식을 들은 대통령은 이 기술을 국가 발전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하기 위해 관련 부처 장관들을 소집했다.
"김범수 박사님, 이 슈퍼컴퓨터가 가진 능력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대통령이 물었다.
김범수는 회의 테이블 앞에 서서 발표를 시작했다. "메탈-Q1은 크게 네 가지 분야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첫째, 의학 연구입니다. 이미 개발된 암 치료제를 넘어, 모든 질병에 대한 맞춤형 치료법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후 및 자연재해 예측입니다. 태풍, 홍수, 지진의 패턴을 분석하고 예측 정확도를 현저히 높일 수 있습니다. 셋째, 경제 모델링입니다. 국가 경제정책의 영향을 사전에 정확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방 분야입니다. 첨단 무기 시스템 개발과 시뮬레이션이 가능합니다."
회의실은 흥분된 대화로 가득 찼다. 각 부처 장관들은 이 기술이 자신의 영역에 어떤 혁명을 가져올지 상상하며 다양한 제안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기술을 어떻게 세계에 공개할 것인가?" 외교부 장관이 물었다. "분명 국제사회의 반응이 클 텐데요."
대통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단계적으로 공개합시다. 먼저 의료 분야의 성과를 중심으로 세계에 알리고, 국제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두겠습니다. 하지만 핵심 기술은 철저히 보호해야 합니다."
김범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AIKA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대통령님." 과학기술처 장관이 말했다. "이 기술을 통해 우리는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큰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기술을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입니다. 이것은 명심해야 할 중요한 원칙입니다."
회의가 끝난 후, 김범수는 한지수와 함께 청와대를 나왔다.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는군요." 한지수가 말했다.
"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김범수가 대답했다. "세계는 곧 대한민국이 어떻게 이런 기술을 개발했는지 의문을 품을 테니까요."
두 사람은 가로등 아래에서 잠시 멈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 순간 멀리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작게 울렸다. 누군가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1984년 10월, 서울에서 '국제 과학기술 엑스포'가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 발전을 세계에 알리는 첫 공식 무대였다.
메탈-Q1의 일부 기능이 시연되었고, 메탈-C1 암 치료제의 임상 결과가 발표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과학자들과 기업인들은 충격과 경외심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기술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죠?" 한 미국 과학자가 김범수에게 물었다. "분명 비밀이 있을 텐데요."
김범수는 미소로 대답했다. "단지 우리가 다른 접근법을 시도했을 뿐입니다. 때로는 기존 경로에서 벗어나는 것이 혁신의 열쇠가 되기도 하니까요."
엑스포 기간 동안, 대한민국은 세계 각국과의 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의료 기술 공유, 기후 변화 공동 대응, 자연재해 예측 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더 복잡한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엑스포 폐막식이 열리던 날 저녁, 김범수는 호텔 라운지에서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이했다. 마르코 리히터, 유럽 연합 첨단기술위원회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남자는 40대 중반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인물이었다.
"김 박사님, 마침내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르코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리히터 씨." 김범수는 상대의 눈을 살폈다. 그는 한지수에게서 마르코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 표면상으로는 기술 협력 대표였지만, 실제로는 유럽 정보기관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는 인물이었다.
"귀하의 슈퍼컴퓨터 기술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특히 양자 프로세싱 부분이요." 마르코가 와인을 홀짝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희 팀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죠."
"하지만..." 마르코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런 발전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2년 전만 해도 한국은 이런 분야에서 선두주자가 아니었잖아요."
김범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때로는 필요가 혁신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단지 다른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했을 뿐이에요."
"흥미롭군요." 마르코의 눈빛이 의심스러웠다.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EU와 한국의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가 가진 자원과 귀하의 기술을 합친다면,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좋은 제안이네요. 구체적인 내용은 정부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겁니다."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김범수는 마르코가 단순한 협력 이상을 원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기술의 비밀을 캐내려는 듯했다.
라운지를 나서면서, 마르코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김 박사님, 이건 단순한 협력 제안이 아닙니다. 우리는 귀하의 기술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출처에 대해 매우 관심이 있습니다."
김범수의 얼굴이 굳었다. 마르코는 미소를 지으며 떠났고, 그 자리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남았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