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순환 정전
1장.
서울 강남의 아파트 단지. 한낮의 태양이 창문을 뜨겁게 달구었다. 온도계는 섭씨 4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지훈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에어컨 컨트롤러를 응시했다. 빨간색 경고등이 깜빡거렸다.
"또 전력 제한이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2035년 여름, 서울은 사상 최악의 폭염을 겪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열기에 신음하고 있었다.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거리는 한낮의 열기를 피해 텅 비어 있었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에너지부 장관이었다.
"지훈 박사,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오늘 오후 3시부터 순환 정전을 시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버팜 몇 곳이 냉각 시스템 과부하로 다운됐어요."
지훈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인근 아파트 단지의 전광판에서 전력 소비량과 제한 시간을 알리는 메시지가 깜빡였다.
"장관님, 이제 숨길 수 없을 겁니다.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합니다."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패닉이 일어날까 걱정됩니다. 2시간 후 청와대에서 비상 회의가 있습니다. 참석해주세요."
통화가 끝나자 지훈은 책상으로 향했다. 벽면의 대형 디스플레이에는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전력 소비량과 온도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도쿄, 상하이, 뉴욕, 런던, 시드니... 모든 도시가 붉은색 경고 상태였다.
그의 태블릿에는 최신 보고서가 열려 있었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분석: 2030-2035」
보고서의 결론은 명백했다.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지난 5년간 400% 증가했고, 전체 전력 생산량의 28%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재 추세라면 3년 내에 전력 위기는 불가피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지훈은 고개를 들었다. 서울의 하늘은 갑자기 검은 구름으로 뒤덮였고, 한순간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름철 극심한 폭염과 폭우의 반복. 기상청은 이를 '기후 요요 현상'이라 명명했지만, 지훈은 이것이 지구의 경고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2장.
샌프란시스코 실리콘 밸리. 엘리자베스 박은 거대한 유리 건물 지하 5층에 위치한 데이터센터를 둘러보고 있었다. 뉴로인텔리전스사의 최신 AI 모델 '오라클-7'이 이곳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박사님, 냉각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서버 용량을 줄이지 않으면 전체 시스템이 다운될 위험이 있어요."
시스템 관리자 톰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저었다.
"용량을 줄일 수 없어. CEO가 다음 주 신제품 발표를 위해 오라클-7의 전체 기능이 필요하다고 했어."
서버실을 가득 채운 기계들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는 듯했다. 열교환기는 최대 출력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실내 온도는 여전히 높았다.
"이런 식으로 유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박사님."
엘리자베스는 냉각 시스템의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전력 소비량 그래프는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알아, 톰. 하지만 회사는 내년까지 두 배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더 짓겠다고 계획 중이야."
사무실로 돌아온 엘리자베스는 창밖으로 캘리포니아의 건조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물 부족으로 곳곳이 황폐해져 갔다. 지난달에는 산호세의 주택가 전체가 산불로 소실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그녀의 화상 회의 알림이 울렸다. 화면에는 한국의 에너지 전문가 한지훈의 얼굴이 나타났다.
"엘리자베스, 보고서 받았나?"
"방금 읽었어.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해."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순환 정전이 시작됐어. 현재 우리가 개발 중인 솔루션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엘리자베스는 책상 위에 놓인 3D 프린팅 모형을 바라보았다. '퓨전-네트'라 이름 붙인 분산형 에너지 그리드 시스템의 프로토타입이었다.
"지훈,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낙관적으로 봐도 3년. 그때까지 대안을 찾지 못하면..." 지훈의 말이 끊겼다. 그들 모두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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