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콜렉터 김대리 15화

무너지는 신화

by 공감디렉터J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김대리는 그날 밤 처음으로 깨달았다.

오한나와의 설렘으로 부풀었던 심장은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그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간신히 답장을 쳤다.


[네. 무슨 일이시죠?]

[내일 점심시간에 잠시 뵐 수 있을까요? 선양그룹 본사 근처 커피숍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다음 날, 김대리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처럼 약속 장소로 향했다.

커피숍 안에는 단정하지만 냉철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가 다가서자 남자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선양그룹 법무팀의 윤태수 변호사입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김민석입니다. 이수진 변호사님과는... 어떤 관계이신지?”

“입사 동기이자, 동료입니다.”


윤 변호사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김대리님께서 최근 저희 회사와 큰 계약을 성사시키신 걸로 압니다.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희 법무팀의 이수진 변호사와 개인적인 통화를 하신 기록이 저희 회사 감사팀에 포착되었습니다.”


김대리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건 그냥... 안부 차 연락했던 겁니다.”

“안부 차 연락한 중소기업 영업사원에게, 저희 회사 핵심 추진 사업인 ESG와 담당자 정보를 알려줬다?”


윤 변호사는 차갑게 웃었다.


“김대리님, 이 바닥이 그렇게 순진한 곳이 아닙니다. 지금 이수진 변호사는 내부 정보 유출 혐의로 정식 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 일로 로펌에 들어가는 대신 회사에 남기로 한 수진이의 커리어가 통째로 망가질 위기란 말입니다.”


#인맥의덫 #리스크관리

인맥은 양날의 검이다. 기회를 가져다주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법적, 윤리적 리스크를 동반한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대기업 간의 관계에서는 사소한 개인적 접촉 하나가 ‘정보 유출’이라는 치명적인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김대리가 절박하게 물었다.


“책임지세요. 당신 때문에 생긴 오해니, 당신이 직접 풀어야 합니다. 이수진 변호사는 당신에게 어떤 내부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의 회사와 우리 회사 양쪽에 명명백백하게 증명하십시오.”


불가능한 요구였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선양그룹에 “사실은 전 남자친구인데, 구차하게 매달려 얻어낸 정보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정도기획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압도적인 노력으로 따낸 계약’이라는 그의 신화는 ‘전 여친 찬스를 쓴 꼼수’로 전락하고, 최악의 경우 계약 자체가 파기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침묵하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밀어 넣는 파렴치한이 된다.


그는 완벽한 덫에 걸렸다. 인맥으로 쌓아 올린 성이, 바로 그 인맥 때문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로 돌아온 그는 망연자실한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사내 메신저가 울렸다. 박팀장이었다.


[박팀장] 내 방으로. 지금 당장.


박팀장의 방에 들어선 순간, 김대리는 얼어붙었다.

박팀장의 얼굴은 이전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차가운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가 자신을 믿고, 자신의 명예를 걸고, 공개적으로 자신을 변호해 주었던 바로 그 상사였다.


“앉아.”


김대리는 기계적으로 의자에 앉았다. 박팀장은 책상 위의 서류를 집어 그에게 던졌다.


“선양그룹 구매팀 최동환 차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쪽에서 내부 감사에 협조해 줄 부분이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


박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며 싸늘하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배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대리. 네 입으로 직접 말해봐.”


그가 천천히 뒤를 돌아, 김대리의 눈을 꿰뚫어 보았다.


“선양그룹 법무팀 이수진 변호사. 대체 누구냐.”


질문이 아니었다. 심판의 시작이었다.

그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단 한 사람의 이름을 해명하지 못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